1. 시디 목록을 만들고 있다. 계기는 대전 부모님의 이사 때문. 어머니가 이사하면서 내 몫(?)으로 비워둔 방에 시디장을 맞춰놓았다고 해 이번에 내려가서 봤는데 그게 꽤 맘에 들었다. 벽 한 쪽을 다 시디장으로 해놨는데 대충 4천 장 정도가 들어갈 것 같다. 어차피 내 방에 쌓여있는 시디들 그냥 대전에 갖다 놓자는 생각으로 여기에 놓을 거, 대전에 갖다 놓을 거 분류를 하고 있다. 분류를 하는 김에 목록도 함께 만들자는 생각으로 열심히 엑셀짓 중. 대략 5천 장 이후로 세어보질 않아서 나도 내가 시디를 얼마나 갖고 있는지 모르겠다. 사실 이렇게 목록을 만드는 큰 이유는 어제 빛과 소금 3집 매물이 떴는데 이걸 내가 갖고 있는지 안 갖고 있는지 생각이 안 나서... 온 방안을 다 뒤집어서 결국 찾긴 했는..
최근 가장 즐겨 듣고 있는 헤비니스 앨범. 이제야 샀다. 보통 프로그레시브 데스코어라 분류하긴 하는데 선명한 멜로디와 키보드 덕에 듣기 그리 부담스럽지 않다. 밴드 특유의 SF 분위기는 그대로 가져가고 있지만 멜로디의 측면에서는 지금까지의 앨범들 가운데 가장 뛰어나다. 밴드의 디스코그래피에서 가장 듣기 좋고 훌륭하다는 얘기. 사납고 광폭한 사운드 사이로 인상적인 기타 솔로가 튀어나올 땐 감탄도 함께 튀어나온다. 각각의 소리들이 선명하게 들리는 사운드 프로덕션도 훌륭하다.
작년부터 눈여겨봐왔던 로큰롤 라디오의 첫 앨범이 나왔다. 기대만큼 해줬다. 초기에 들려줬던 나 같은 싱글들이 워낙 좋아서인지, 이후 새로운 곡들에 실망을 표하는 얘기들도 좀 들렸는데 앨범 수록곡들 모두 무난하게 맘에 든다. 특히 이 곡은 앨범의 베스트라 생각하는 트랙. 사실 이 곡을 그냥 앨범의 마지막으로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개인적인 아쉬움은 있다. 김내현의 보컬에 아쉬움을 나타내는 이들도 꽤 있지만 난 처음부터 김내현의 목소리를 좋아했다. 이런 중저음의 목소리를 그동안 쉽게 들을 수 없어서였는데, 이 노래에서 그 목소리가 가진 매력을 충분히 보여줬다 생각한다. 밴드의 입장에서도 그저 닥치고 춤추기만 하는 밴드가 아니라 이런 무드도 만들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는 면에서 의미 있는 트랙이라 생각한다. 매..
다른 정서, 다른 감성의 노래들, 젠 얼론 블로그든 페이스북이든 SNS는 사적인 공간으로 두고 싶어서 되도록 (얼굴) 아는 사람들과만 교류하고 내가 하는 일(쓰는 글)도 굳이 옮기진 않는 편인데 가끔씩 예외는 있다. 정말 괜찮은 음악가를 알게 돼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을 때. 젠 얼론이 딱 그런 경우다. 우연히 란 노래를 듣게 됐고 그때부터 난 젠 얼론의 팬이 됐다. 때마침 무대륙에서 열린 앨범 발매 기념공연도 보러 가고, '온스테이지'에 추천을 해 제주에까지 내려가 그의 모습을 담을 수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란 이런 것일 거다. 누군가의 음악에 확신을 갖게 됐을 때 그를 지지하고 알리는 것. 젠 얼론의 음악은 그런 확신을 얻기에 충분하다. 양날의 검일 수 있는, 핑크문 대표님도..
메킹에서 누가 추천해 들어봤는데 이건 정말 콜롬비아産 개킹카 스래쉬. 추천한 사람은 '정글 스래쉬'라 부르던데 정말 잘 어울리는 표현이다. 얼마 전 한밤에 이 음악을 들으며 귀가하는데 좀 공포스러울 정도였다. 마치 앞이 보이지 않는 정글을 헤쳐 나가듯 숨이 턱턱 막히는 느낌이 들었다. 의도한 것인지, 현실적인 여건 때문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결과적으로는 사운드 프로덕션의 승리. 무엇보다 세풀투라의 저 찬란했던 시절, 그러니까 [schizophrenia]와 [beneath the remains] 시절의 그 밑도 끝도 없이 달리고 조여오던 음악이 연상돼서 좋았다. 그 시절의 환상적인 재현이다. 'esquizofrenia'란 팀 이름은 '정신분열증'을 뜻한다 한다. 세풀투라의 [schizophrenia]와 ..
퍼플에 익스트림 메탈 중고 매물이 잔뜩 떠서 예닐곱 장 집어왔다. 누군가 또 이렇게 자신의 컬렉션을 정리한 모양이다. 사이트에서 리스트를 보고 살 음반들을 미리 몇 장 적어갔는데 생각지도 못한 이 앨범을 발견하고 얼른 챙겼다. 국내 레이블인 해머하트 프로덕션에서 나온 비숍 오브 헥슨의 데뷔 앨범. 국내에서 라이선스한 게 아니라 발매 자체를 해머하트에 한 거다. 비숍 오브 헥슨은 이스라엘의 블랙 메탈 밴드인데 흥미롭게 블랙 메탈의 변방인 한국의 해머하트와 앨범 계약을 했다. 사실 음악은 그리 특별할 것 없는 심포닉 블랙인데, 해머하트 대표였던 시근배 씨가 자취를 감춰버리고 재발매도 못하면서 굉장한 레어템이 돼버렸다(새드 레전드도 비슷한 경우, 물론 음악은 새드 레전드가 한참 더 훌륭하다). 제대하고 거의 ..
하늘과 땅 사이에 바람 한 점 없고 답답하여라 숨이 막히고 가슴이 미어지던 날 친구와 나 제방을 걸으며 돌멩이 하나 되자고 했다 강물 위에 파문 하나 자그맣게 내고 이내 가라앉고 말 그런 돌멩이 하나 날 저물어 캄캄한 밤 친구와 나 밤길을 걸으며 불씨 하나 되자고 했다 풀밭에서 개똥벌레쯤으로나 깜박이다가 새날이 오면 금세 사라지고 말 그런 불씨 하나 그때 나 묻지 않았다 친구에게 돌에 실릴 역사의 무게 그 얼마일 거냐고 그때 나 묻지 않았다 친구에게 불이 밀어낼 어둠의 영역 그 얼마일 거냐고 죽음 하나 같이할 벗 하나 있음에 나 그것으로 자랑스러웠다 -김남주, 돌멩이 하나
앞으로 꼭 한 달 뒤, 11월 1일에 끝내주는 공연이 열린다. 서영도 일렉트릭 앙상블, 세컨 세션, 윤석철 트리오, 이렇게 세 팀이 벨로주에서 공연을 한다. 가격은 단돈 만 원! 예매를 하면 또 8천 원이다! 공연 시간은 160분. 이렇게 싸게 하는 이유는, 보통 (보컬이 없는) 연주 밴드들에게 관심이 적고 실제 공연을 해도 관객들이 그리 많지가 않은데 이번만은 백 명, 이백 명 정도의 관객을 두고 공연을 해보고 싶다는 기획자와 음악가들의 생각이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공연은 음악가든 기획자든 서로 손해 보면서 하는 공연이다. (관계자들조차도) 이 세 팀의 공연을 본 사람들 수는 극히 적을 텐데 이번 기회에 (특히 세컨 세션) 꼭 보고 은혜 받기를 바란다. 세컨 세션과 서영도 일렉트릭 앙상..
내 마음의 노동은 연못을 파는 것 나는 길가에 앉아서도 지나가는 예쁜 여자의 몸에 연못을 파고 빵집 파리 크라상 '파리 크라상' 하는 발음의 생기에도 연못을 판다 지난날은 모두 거짓말의 날들 연못은 온몸의 영특한 빛으로 지난 시간을 비춘다 나는 신문지 위에도 신문지 위의 독재자 위에도 백만 마리의 되새떼 위에도 연못을 판다 조그만 눈길들 물방울처럼 모여 하늘의 구름 하늘의 못인 별 몸에 들인다 버스 정류장에서 지하철 정거장에도 병원을 빠져나가는 가엾은 목숨에도 나는 연못을 파고 나는 그 연못을 풍금과도 같이 연주한다 나의 연못은 지금 만국공원에도 있고 진부령에도 있고 유동 생맥주집에도 있고 동숭동 거리에도 있고 신포동 대성 불고기에도 있다 나는 새로 단 간판 밑으로 들어가는 聖骨들 어깨에도 연못을 파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