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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

연못을 파서

시옷_ 2013. 10. 1. 08:13
내 마음의 노동은 연못을 파는 것
나는 길가에 앉아서도 지나가는 예쁜 여자의 몸에 연못을 파고
빵집 파리 크라상 '파리 크라상' 하는 발음의 생기에도
연못을 판다
지난날은 모두 거짓말의 날들
연못은 온몸의 영특한 빛으로 지난 시간을 비춘다

나는 신문지 위에도 신문지 위의 독재자 위에도
백만 마리의 되새떼 위에도 
연못을 판다 조그만 눈길들
물방울처럼 모여
하늘의 구름 하늘의 못인 별
몸에 들인다

버스 정류장에서 지하철 정거장에도
병원을 빠져나가는 가엾은 목숨에도
나는 연못을 파고 나는 그 연못을
풍금과도 같이 연주한다

나의 연못은 지금 만국공원에도 있고
진부령에도 있고 유동 생맥주집에도 있고
동숭동 거리에도 있고 신포동 대성 불고기에도 있다 나는
새로 단 간판 밑으로 들어가는
聖骨들 어깨에도 연못을 파고
잎 진 모과나무 나뭇가지 사이에도
연못을 판다 나는 그 연못이 끊지 못하는
긴 여운을 듣는다

나의 연못은 그러나
그렁그렁하기만 할 뿐
언제나 그렇기만 할 뿐
연못 허리를 밤낮 건너가는 것은
몇 개의 영롱한 빛일 뿐 아무 자국도 남기지 않는
나의 시는 세월 속에
그렁그렁하게 연못을 팔뿐

-장석남, 연못을 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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