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정말로) 음반 뒷면에 '동아기획'이란 이름이 찍혀 있으면 믿고 사던 시절이 있었다. 소나무의 유일한 앨범도 그 믿음으로 샀었다. 앨범은 그리 만족스럽지 않았지만 몇몇 노래는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 이 노래는 특히 좋아해 한동안 따라 흥얼거리곤 했었다. 제목부터 맘에 들었던 이 노래는 앨범 한 장 내고 사라진 (개인적으로 호기심이 많지만 정보는 거의 없는) 싱어-송라이터 홍성수가 만들어줬다. 강허달림이 첫 앨범에서 이란 제목으로 커버하기도 했지만 역시 '처음'이란 감흥은 쉽게 넘어서질 못한다.
1. 요즘 음반 구매를 자제하고 있다. 기적적인 자제력이다. 퍼플 사장님 보고 싶다.ㅠ 2. 조카와 가끔 카톡을 하는데, 조카가 너무 무뚝뚝해 보인다며 마침표 좀 그만 찍고 하트도 붙여보고 하란다. 알았엉♥ 3. 요즘 들은 말 가운데 가장 마음에 드는 건 '빙그레 썅년'. 난 최근에야 이 말을 알았는데 (여초 사이트를 중심으로) 진작부터 많이 쓰이고 있었던 모양이다. 어감도 좋고, 듣자마자 바로 무슨 뜻인지 와 닿아서 특히 좋았다. 예전부터 대체 이런 말을 처음 만든 사람은 누구일까 늘 궁금해 했었다. 단순히 인터넷 신조어뿐만 아니라, 옛날에 유행했던 '옥떨메'니 하는 이런 말들 모두 다. 자기가 처음 쓴 말이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의 입을 통해 전파되는 걸 보는 건 어떤 기분일까. 3-1. 또 하나, 들..
어제 창기 형을 인터뷰하고 왔다. (고등학생 시절부터 나의 청년기를 지배한) 정말정말 좋아하는 음악가라 살짝 떨리는 마음으로 창기 형이 있는 병원엘 찾아갔다. 만나서는 내가 창기 형의 음악을 가장 좋아하는 사람 10명 안에 들어갈 거라는 이상한 고백 아닌 고백을 했다(내가 동물원의 을 얼마나 좋아하는지를 얘기하고). 동물원과 창고 등의 앨범에 사인을 받으려 했는데 아침에 급하게 나오느라 미처 시디를 챙기지 못했다. 다음에 사인 받기 위해 다시 한 번 병원을 찾겠다고 약속했다. 어차피 1~2주에 한 번씩은 매봉역엘 가야 하니까. 병원에 도착했을 때 마침 막 나온 이 뮤직비디오를 보고 계셨다. 자신과 아이가 함께 있는 사진 다음에 활짝 웃고 있는 광석이 형의 사진이 나오는 게 가장 맘에 든다 했다. 이 밤에..
얼마 전 진중권이 라임은 한국말 랩에는 잘 안 맞는 것 같다는 UMC스러운 말을 했는데, 그때 누군가가 그에 대한 반박으로 이 노래의 가사를 올려서 오랜만에 찾아 들었다. 그 누군가가 했던 말처럼 정말 이 가사에서 억지스럽거나 서사가 무너진 부분이 있나? 이미 진중권(또는 UMC) 같은 이들이 했던 주장은 버벌 진트와 피-타입이 등장하면서 진작에 논파당했는데 잊을 만하면 이런 주장들이 튀어 나온다. 진중권이 스스로 인정한 것처럼 "(힙합) 음악 잘 안 듣는" 사람들이 특히 더 용감하게. 이미 SNP 출신들이 유려한 한국말 라임이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고 증명했는데도 이런 주장들이 계속해서 나오는 걸 보면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억지 라임이 문제라면 그 억지 라임을 쓰는 애들을 비판해야지, 그게 '한국..
백현진과 정차식의 '더 뺀드' 공연을 보고 왔다. 각자 따로 공연하는 거지만 둘이 함께 하는 대화 시간도 있었고, 일종의 미션도 있었다. 노래 하나를 정해서 각자 커버하는 것. 구남과 불쏘클은 방실이의 를 한 모양이고, 3호선 버터플라이와 이이언은 팸플릿을 만들 때까지 미처 정하지 못했는지 '???'로 표기돼있다. 백현진과 정차식이 함께 고른 노래는 송창식의 이었다. 노래를 고른 건 정차식이고, 백현진은 유재하의 을 골랐다가 양보했다 한다.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는 노래라 공연이 끝난 뒤에도 동행인과 함께 계속해서 흥얼거렸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연가 가운데서도 으뜸 가는 노래라 생각한다. 노랫말만으로도 얘기 끝났다. 창식이 형 짱짱맨.
얼마 전 인디 관련 음반 리스트를 만들 일이 있었는데,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언니네 이발관의 [후일담]을 맨 위에 놓았다. 이석원과 정대욱, 둘의 '경쟁'이 만들어낸 다시없을 앨범. 이석원: (정)대욱이랑 같이 계속 갔으면 나름대로 좋은 부분은 있었을 것이다. 대욱이가 '메이킹'의 관점에서 보면 굉장히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런데 '리더의 포용력'을 얘기한다면…. 내가 밴드를 오래 하다 보니 밴드는 민주주의를 해서는 안 굴러간다는 것을 알게 됐다. 리더가 절대적인 독재를 해야 하고, 다른 멤버들이 거기에 따라와 주지 않으면 굴러가지 않는다. 물론 아주 예외도 있다. 크라잉 넛 같은 경우는 누가 리더인지 잘 모르겠고 맨날 치고받고 하면서도 잘 굴러간다. 노 브레인, 노이즈가든과 같은 뛰어..
숨 막힐 듯한 뜨거움을 감당할 수 없었어 우린 역행하듯 더 거칠게 달릴 수밖에 없었어 너의 추억이 손에 잡힐 듯 어제 일인 것 같아 어두운 거울에 비친 모습은 실제보다 더 가깝게 보이곤 해 너의 노래와 나의 언어로 서로의 자신을 찾고 외로움으로 뭉친 가슴의 이 덩어리를 사랑이라 믿고 단골집 이모가 제발 싸움은 밖에 나가 하라고 하기에 우린 밖으로 뛰쳐나가 우리가 여기에 있다고 고함쳤지 네가 날 떠났다는 걸 받아들일 수 없었어 너를 미워하고 또 날 미워해야 했어 왜 내게 말할 수 없었니 그렇게 날 믿지 못했니 왜 그렇게 떠나가야 했니 첫 녹음을 하고 인정이란 달콤함에 길들여지고 그것에 중독되어 더 많은 욕망과 불안을 알게 되고 네가 날 필요로 했을 때 난 나만의 이유로 거기에 없었고 나의 친구이자 형제였던..
삶창(난 예전 이름 '삶이 보이는 창'이 더 좋다)에서 나온 류인숙의 '독수리표 쉐이코 카세트'를 읽었다. 노래들을 소재로, 그 노래에 대한 감상과 노래와 관련한 글쓴이의 여러 가지 추억들을 풀어 쓴 책이다. 이런 형식의 책들은 꽤 많지만(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닉 혼비의 노래들'), 가장 만족스럽게 읽었다. 김민기부터 김광석, 산울림, 박은옥 등등 주로 옛날 노래들이 많이 나오고 글쓴이의 이야기도 주로 먼 기억 속에서 나오는데 담담하게 써내려간 그 가난한 시절의 이야기들이 굉장한 위로가 돼주었다. '위로'받는다는 것에서 김난도가 떠오르기도 했는데, 고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서울 공장으로 일하러 떠나는 글쓴이를 보기 위해 새벽에 환타와 보름달 빵을 사가지고 온 친구의 마음을, 떠나기 전 남동생의 참고..
1. 마흔이 다 된 나이에 처음으로 곱창을 먹어봤다. 인생은 사십부터. 2. 전부터 하고 싶던 일이 하나 있었는데 5월부터 그 일을 하게 됐다. 누군가가 빠지고 그 자리에 들어간 게 아니라 내가 거기에 더해진 거라 더 마음 편하게 일할 수 있을 것 같다. 생각해보면 난 참 운이 좋은 것 같다. 내가 그리 능동적인 사람도 아니고 게으르기까지 한데 늘 먼저 같이 해보지 않겠냐 제안을 받으니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책도 그렇고 온스테이지도 그렇고 이번에 맡은 일도 그렇다. 물론 내가 짱인 것도 좀 있지만,-_- 늘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잘 해야겠다. 3. 얼마 전에 과천엘 갔다가 멘붕 겪고 왔다. 위치를 잘 몰라서 택시를 타야 하는데 이놈의 택시들이 하나같이 다 '서울 택시'라며 서울 가는 손님만 태운다고 하는..
카세트테이프로만 가지고 있던 정태춘·박은옥 부부의 [발췌곡집 1] 시디를 싸게 샀다. '베스트'나 '골든' 대신 '발췌곡집'이란 제목을 쓴 것도 부부에게 참 잘 어울리는 것 같다. 부부가 그 전의 음반들을 정리하면서 내놓은 [20년 골든 앨범]보단 [발췌곡집 1/2]가 나에게는 더 친숙하고 좋다. 어렸을 때 뭣도 모르고 이 테이프를 샀는데 발췌곡집의 뜻도 모르고 '무슨 노래들이 이렇게 다 하나같이 좋지?'란 생각을 했었다. 그 시작을 열렸던 첫 번째 노래. 그 전에 이미 이나 같은 몇몇 노래는 알고 있었지만 내가 공식적으로(?) 처음 맞이한 정태춘·박은옥의 노래였던 셈이다. 더불어 은옥이 누나가 가진 목소리의 매력을 느끼게 해준 첫 노래다. (주로 세대에 따라) 호불호가 좀 갈리는 편이지만, 개인적으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