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얼마 전 인디 관련 음반 리스트를 만들 일이 있었는데,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언니네 이발관의 [후일담]을 맨 위에 놓았다. 이석원과 정대욱, 둘의 '경쟁'이 만들어낸 다시없을 앨범.

이석원: (정)대욱이랑 같이 계속 갔으면 나름대로 좋은 부분은 있었을 것이다. 대욱이가 '메이킹'의 관점에서 보면 굉장히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런데 '리더의 포용력'을 얘기한다면…. 내가 밴드를 오래 하다 보니 밴드는 민주주의를 해서는 안 굴러간다는 것을 알게 됐다. 리더가 절대적인 독재를 해야 하고, 다른 멤버들이 거기에 따라와 주지 않으면 굴러가지 않는다. 물론 아주 예외도 있다. 크라잉 넛 같은 경우는 누가 리더인지 잘 모르겠고 맨날 치고받고 하면서도 잘 굴러간다. 노 브레인, 노이즈가든과 같은 뛰어난 밴드들뿐만 아니라 수백수천의 밴드들이 명멸하는 이유 중에는 리더가 독재를 하려는 것을 나머지 멤버들이 받아들이지 않으려 하기 때문인 것도 있다. 대욱이는 중3 때 언니네를 시작했고, 워낙 나이 차이가 많아서 1집 때는 그게(독재하는 것이) 가능했다. 그런데 2집 때는 걔도 머리가 굵어지면서 나와 음악적으로 끊임없이 경쟁하려고 했다. 그렇지만 그게 생산적인 경쟁이 아니었다. 한 곡에서 기타가 보컬과 경쟁하려고 하면 그건 팝 밴드로서는 '꽝'이다. 헤비메탈 밴드는 기타가 노래의 핵이지만 팝 밴드는 노래 멜로디가 무조건 1등이기 때문에 기타는 서브하거나 자기 자리에서만 나서야 한다. 하지만 대욱이 같은 경우에는, 예를 들어 2집의 <순수함이라곤 없는 정>에서 노래 멜로디가 있는데도 기타로 계속 멜로디를 쳤다. (현재 들을 수 있는 곡은) 믹싱할 때 꽤 덜어낸 것이다. 그러한 부분들 때문에 대욱이랑 갈라서는 것이 좋겠다고 얘기했다.

대욱이도 워낙에 창조적인 욕구가 강한 사람이다. 언젠가 줄리아 하트 합주하는 것을 가서 보았는데 내가 하듯이 하고 있었다. 합주하면서 계속 멤버들에게 오더를 주는데, "약간 느리게, 약간 빨리 한 번 더 돌리고" 이런 식이다. 이런 것은 언니네 2집 녹음 당시에는 상상할 수 없던 일이다. 드럼 치던 (김)태윤이도 워낙에 경력이 오래 됐고 (이)상문이도 그렇기 때문에 1집에서처럼 수족 부리듯이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대욱이가 줄리아 하트에서 그렇게 하는 것을 보고는 "아, 대욱이가 나처럼 자리를 찾았구나. 저게 대욱이가 있어야 할 자리구나"라고 생각했다. 대욱이는 내게는 '이혼한 부인' 같은 느낌이다. 다시는 함께 할 수 없지만 영원히 내 마음 속에 있는 존재이다. 대욱이랑 나랑 1, 2집을 하면서 있었던 일들은 너무나 극단적이고 드라마틱하기 때문에 아무도 모른다. 상문이도 태윤이도 모른다. 서로에게 지울 수 없는 사람들인 것은 분명한데, 더 이상 음악을 같이 할 수는 없다.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링크
TAG
more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