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중에 다시 얘기할 기회가 있겠지만, 이번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은 정말 그림이 잘 나올 수 있었다. 그래서 기대가 예년보다 컸는데 이번에 너무나 어이없게 구사패가 나오는 바람에 며칠간 좀 허탈하게 지냈다. 어쨌거나 그 얘기는 나중에 하고, 이렇게 기분 처질 때 자주 듣는 음반 가운데 하나다. 전형적인 AOR 음반이다. 스웨덴 출신으로 전성기 시절의 토토를 연상케 할 정도로 최상의 송라이팅 감각을 들려준다. 사운드 전반에 걸쳐 느껴지는 상쾌함과 청명함은 이 앨범을 뜻 그대로 '쾌반'이라고 부르고 싶게 한다. 특히 이 곡부터 , 로 이어지는 초반 3연타는 가히 예술이라 할 만하다.

아, 이 친구가 원래 이렇게 괜찮은 팝송을 부르던 친구였나. 전에 이 친구 앨범 홍보할 때 자주 거론됐던 킹스 오브 컨비니언스나 벨 앤 세바스찬, 라디오헤드 등의 자장 안에 있으면서도 어느 한쪽으로 깊이 발을 담그지는 않았다. 북구라파 팝 선배인 아-하의 느낌도 많이 묻어나온다. 집에 파스텔에서 나왔던 전작이 어딘가에 있을 텐데 찾아서 다시 들어봐야겠다. 로니 디어는 에밀 스반앵젠이란 이름을 가진 스웨덴 청년의 프로젝트. 써놓고 보니 음악이 확실히 스웨덴스럽긴 하다.

써스데이의 새 앨범이 나왔다. 마이너 레이블 에피탑으로 강등된 뒤 처음으로 내는 풀렝쓰 앨범이다. 엔비와의 스플릿 앨범을 통해 親엔비적인 사운드가 계속 이어지길 기대한 사람들이 많은 것 같은데-사실 나도 어느 정도는-다시 예전의 음악으로 되돌아갔다. 레잍유어뮤직엘 가보니 거기에 실망한 사람들도 있던데 그런 건 그냥 포스트 록 밴드에게 맡겨도 되지 않나 싶다. 난 이렇게 여전히 써스데이스런 음악도 맘에 든다. 노래 중간 정말 지하에서 외치는 듯한 '격정'도 좋다.

레이니 선의 네 번째 앨범이 나왔다. 1집 때의 사운드로 회귀했다는 얘기가 많이 들리지만 그때와는 또 다르다. 예전만큼 히스테릭하지도 않고, 또 2집과 3집에서 들려줬던 뽕끼의 흔적도 찾을 수 있다. 다만 이 앨범이 정차식의 표현대로 '맨(남자)다운' 음악이란 것만은 분명하다. 이 노래는 3집의 몇몇 노래들에서도 흔적을 찾을 수 있던 거지만 80년대의 처절한 가요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윤시내의 나 김수희의 같은. 사람들이 하도 조덕배의 커버곡을 원해서 아싸리 그런 분위기의 노래 하나 만들겠단 생각으로 작정하고 만든 거라 한다. 인터뷰를 거의 2시간 가까이 해서 이걸 녹취를 할까 말까 고민 중이다.

에릭 클랩튼의 대박 치고, 언플러그드 음악이란 게 한참 인기 얻을 때 때맞춰 나온 앨범이다. 빛과 소금의 장기호와 박성식, 11월 출신의 조준형, 역시 11월과 하늘바다 출신의 장재환이 함께 했다. 시류에 영합한 얄팍한 측면이 있는 앨범이지만 그래도 엘피로 사서 꽤 즐겁게 들었던 기억이 있다. 빛과 소금의 히트곡인 이나 , 11월의 히트곡인 , 그리고 비틀즈와 마이클 프랭스의 노래들이 어쿠스틱한 편곡으로 들어있다. 옛날 생각도 나고, 아무 때나 편하게 들을 수 있을 것 같아 이번에 웃돈을 주고 중고 시디로 구입을 했다. 오랜만에 들으니 아주 만족스럽다.

리버맨 뮤직 컴필레이션 앨범에서 처음 접했다. 처음 들었을 때 가장 먼저 꽂힌 노래였는데 이상하게 밀리고 밀리다 이제서야 구입을 했다. 꽤 유명한 아트 록 밴드인 존지의 리더 존 존스가 22살에 혼자서 만든 앨범이라 한다. 훗날 존 존스의 미래를 보여주듯 멜로트론 같은 악기가 쓰이기도 했지만 거의 양념 수준이고, 대부분의 노래들이 아름다운 포크 음악이다. 웹상에서 볼 때 썩 맘에 들지 않았던 커버 디자인도 직접 보니 꽤 괜찮다. 다만 보너스트랙으로 들어간 두 곡의 노래는, 내가 원체 보너스트랙을 안 좋아하기도 하지만 이 앨범에선 특히 앨범의 통일성을 해치고 있어서 더욱 맘에 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