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에 이어서 요즘 또 클래식 바람이 불어서 클래식 시디들을 한두 장씩 사고 있다. 그래봐야 남들 다 듣는 베토벤이나 브루크너의 교향곡을 주로 듣는 정도지만 가끔씩 밤에 한 장씩 땡겨주시면 참 좋다. 요즘 가장 자주 듣고 있는 건 베토벤의 현악4중주 제15번이다. 아직까지 최고의 클래식은 베토벤의 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상당수 애호가들이 베토벤의 후기 현악4중주를 맨 앞자락에 놓는 걸 보면 또 그대로 수긍이 가기도 한다. 특히 3악장은 평온함을 넘어서 어떤 종교적인 경건함까지도 갖게 해준다. 심란한 이 계절에, 그리고 이 저녁에 장석남이나 마종기의 시를 읽으며 이 음악을 듣는 게 나로서는 최선이다. 어흥.
레어템 시리즈 #2 남조선에서 나온 이피들 가운데 가장 훌륭한 이피를 고르라면 거의 맨 앞자락에 위치할 음반. 비록 음질은 조악하지만 양용준이 만들어낸 멜로듸만은 최고라 할 만하다. 다섯 곡 모두가 어디 내놓아도 빠지지 않을 양질의 싱글들이다. 이후 나온 또 한 장의 이피와 정규 앨범도 괜찮은 편에 속하지만 이 음반에서 품었던 기대만큼은 해주지 못했다. 마니아 출신이 만든 느슨한 형태의 음반이지만 그 내용물만큼은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인디 팝/얼트 컨츄리 계열의 걸작.
정말 의외의 앨범. 한 번 만나서 이야기해보고 싶긴 한데, 이게 뮤지션으로서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인 건지, 아니면 그냥 한 번 시도해본 건지 아직까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거나 루시드 폴, 김종완, 용린 등의 곡들과 함께 자신의 자작곡들을 실었다. 루시드 폴의 노래는 정말 폴스럽고, 김종완의 노래 역시 지극히 넬스럽다. 이 노래는 듣는 순간 누가 만들었는지 알 수 있을 듯. 자작곡들 또한 나쁘지 않다. 거칠게 얘기하자면 이상은의 길과 이소라의 길을 절충한 모양새다. 시작은 무척이나 긍정적이다.
레어템 시리즈 #1 신윤철의 세 번째 앨범. 이 앨범은 발매됐을 때 바로 샀는데, 신윤철의 1, 2집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던 내가 무슨 이유로 그렇게 신윤철이란 이름에 신뢰를 갖고 바로 구매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확실한 건 시간이 더해갈수록 신윤철이 만든 음반들도 더 맘에 든다는 것. 신윤철 본인도 이 앨범을 갖고 있지 않아 재발매를 하고 싶은 마음이 큰데, 저작권이 워낙 복잡하게 얽혀있어 쉽지는 않을 거라 한다. 앨범 안에는 자신이 공부했던 서울예전 실용음악과스러운 음악과 클래식 록 스타일이 함께 공존하고 있다. 는 1집에 이미 실려 있던 노래이고, 나 , 은 이후의 신윤철 관련 앨범에서도 다시 들을 수 있는 노래들이다. 송홍섭, 정원영, 신대철, 신석철, 유앤미 블루, 김병찬 등 익숙한 이름들도 눈..
노르웨이 출신의 피아니스트 케틸 뵈른스타드와 기타리스트 타르예 립달이 2005년 독일 라이프지히에서 가졌던 공연 실황. 다른 악기들 없이 피아노와 기타만으로 구성되어 있다. 뵈른스타드의 명작 [the sea] 등에서 이미 호흡을 맞춘 적이 있는 두 사람은 라이브에서도 두 개의 악기만으로 깊고 슬픈 정서를 만들어내고 있다. 뵈른스타드의 타건은 스튜디오 앨범들에서보다 더 힘이 들어가 있고, 립달 역시 단순한 보조의 차원을 넘어서 확실하게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앨범 안에서 가장 강렬하며 깊은 자국을 만들어내는 곡.
이주원 (1951-2009) 사랑이 깊으면 외로움도 깊어라. 그 곡은 1968년에 만든 곡인데, 내가 늘 품었던 말 중 하나는 "인생은 오직 사랑으로만 존재하고 영위해나갈 것이다"였다. 그래서 늘 무언가 사랑하고자 했다. 그것이 이웃집 강아지이든 문 밖을 나서면 늘 바람에 흔들리는 포플러나무이든 간에 사랑하고자 했다. 심지어는 누이가 쓰다가 나에게 준 파커 만년필을 너무 사랑했고, 그것이 내 사랑의 객체였던 기억도 있다. 그 만년필로 일기를 다 쓰고 나서도 손에서 놓게 되지 않아 계속 쥐고 있기도 했다. 어쨌든 약간 병적인 구석도 있지만. 그 노래를 쓸 당시 꼭 사랑의 아픔을 느꼈다기보다도 교회 다닐 때 만났던 여학생들, 그동안에 짝사랑을 일으켰던 대상들에게서 내게로 오는 외로움이 있었다. 그런 얘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