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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

녹색평론

시옷_ 2011. 11. 19. 09:02
잃어버린 '시간'입니다. '세대'입니다. 칠흑 같은 어둠, 반딧불의 날갯짓, 개구리 울음, 마른풀 타는 연기, 물 빠진 갯벌…. 뭘 잃어버렸는지조차 모르고 일상을 꾸려갑니다, 물신만 추앙할 뿐. 숫자로 표현될 수 없는 가치는 더 이상 이 땅의 것이 아닙니다. 세상 어느 곳이건 99퍼센트가 1퍼센트에 의해 전복되고, 공동의 것은 소유권의 절대성 앞에 무릎 꿇습니다. 사람들에게 내일이란 없습니다. 우리란 없습니다.

명백한 예외주의입니다. 그랬지요. [녹색평론]의 길은 늘 외로웠지요. 마치 무언극 같았지요. 애타게 얘기해도 들으려 하지 않는, 안타까운 목소리였지요. 그래도 바람찬 광야에서 20년을 버텨왔네요. 함께 할 수 있음을 고맙게 생각합니다. 존경합니다. - 최재천(변호사, 전 국회의원)

아메리카 원주민, 인디언으로 통칭되는 그들이 그들의 땅을 빼앗고 그들을 학살하고 멸망의 나락으로 내몬 유럽인들보다 더 고등한 생명체일 수 있다는 생각에 확신을 불어넣어준 것은 [녹색평론]이었다. 번쩍거리는 유럽인들의 삶보다 조촐했던 인디언들의 삶이 더 복된 것일 수도 있다고 [녹색평론]은 얘기했다.

게르만이 로마를 정복하고, 북방 유목민이 중원을 휩쓸고, 바다 건너 왜가 조선을 유린한 건 결코 그들이 더 앞서가고 우월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어쩌면 흔적이 없이 스러져간, 그 기억조차 우리에겐 남은 게 없는 숱한 마을과 부족과 문명들이야말로, 그들을 집어삼키고 번성한 자들보다 고등한 존재였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주입받아온 역사니 전통이니 가치니 하는 것들은 어쩌면 점잖은 고등생물들을 죽이고 살아남은 영악한 자들이 자기합리화를 위해 조작한 알리바이일지도 모른다.

우리 세대는 날마다 거대한 뭔가가 새로 건설되고, 총생산과 수출액이 몇퍼센트 올라가고, 세계 여러 가난한 나라들에 비해 얼마만큼 더 잘살게 되었는지 확인하는 데서 희열을 느끼도록 훈련받으며 자랐다. 그건 주술이고 주문이었으며, 우리는 성장의 광신도로 자랐다. 성장 없는 삶은 공허하고 불안했다. 그렇게 느끼도록 두뇌 회로가 세팅된 로보트였다. 그리하여 오로지 성장을 위해, 지구를 망가뜨리고 마침내 성장해야 할 이유와 목표 자체마저 파괴해버렸다.

그때 [녹색평론]이 나타났다. 그리고 피안을 향한 화두처럼 물었다. 도대체 사는 게 뭐고 왜 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 한승동(한겨레 논설위원)

[녹색평론]이 20주년을 맞았다. 내가 좋아하는 재천이 형과 승동이 형이 20주년을 축하하며 연대사를 써줬다. 나는 [녹색평론]을 본 지 이제 겨우 1년 좀 넘은 독자이지만, 그래도 작년에 내가 한 일 가운데 가장 잘한 것은 [녹색평론]을 보기 시작한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서점에서 한 권씩 사보다가 9-10월호부터 정기구독을 시작했다. [녹색평론]의 글이 따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이상주의자들의 공허한 얘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녹색평론]의 글들을 읽으면서 가장 좋은 건 계속해서 생각하게 한다는 것이다. 꼭 해답을 찾거나 결론에 도달하지 못해도 좋다. 어떤 글을 읽고 그 주제에 대해 생각해보고 관련된 자료를 찾아보고 하는 그 행위 자체가 나에겐 의미 있고 소중하다. 나꼼수를 듣고 트위터의 글들을 보며 같이 이명박 욕하고 낄낄대는 것보다 [녹색평론]의 글을 하나 읽고 거기에 대해 생각하고 사유하는 게 더 가치 있는 일이라 믿는다. [녹색평론]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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