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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

이제라도

시옷_ 2011. 10. 29. 11:37

내가 이른바 '진성' 노빠들을 신뢰하지 않는 이유는 그들이 어떤 사안에 대해 그걸 자신의 가치관이나 '옳고/그름'의 문제로 판단하는 게 아니라 '내편/네편' 진영논리로만 나누어서 바라보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가끔씩 이런 생각을 한다. 만약 노무현 정권 때 김진숙이 크레인에 올라갔다면 그들은 지금처럼 김진숙을 응원하며 희망버스에 올랐을까? 만약 제주 강정마을 문제가 노무현 정권에서 일어났다면 그들은 지금처럼 강하게 반대하며 정부를 비난했을까? 김주익이나 평택 대추리의 예로 본다면, 슬프게도 그렇지 않을 거라는 결론이 나온다. 그저 외면하거나, 오히려 김진숙이나 강정마을 주민들을 욕하는 광신도들이 생겨났을지 모른다. 그들에겐 '무엇을'보다 '누가'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번에 다시 FTA 문제가 불거지면서 그들은 꽤나 혼란스러운 것 같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명박 매국노"를 외치면서 "이명박의 FTA와 우리 노짱의 FTA는 다르다!"고 하고 다녔지만, 엊그제 광고를 계기로 FTA 논의가 활발해지면서 그런 주장은 다 논파당했다. 노무현을 광고에 끼워 넣는 저열함에 분노하는 건 이해하고 동감한다. 하지만 사실관계만으로 따져볼 때 그 광고 내용에 반박할 만한 점은 별로 없다. 자동차 문제 일부가 바뀌었을 뿐 노무현 시절에 민주노동당 의원들과 이해영, 우석균, 송기호, 이런 사람들이 지겹도록 문제제기했던 독소조항(에 대한 논의는 둘째 치고)은 그대로다. 참여정부 시절부터 FTA를 반대해온 천정배, 최재천 모두 별로 달라진 게 없다는 걸 인정하고 있다. 이 사실을 믿지 못하겠다는 듯 "진짜?"라고 되묻는 사람들은 그럼 대체 뭘 알고서 이명박의 FTA와 노무현의 FTA는 다르다고 한 것인가? 막연히, 노무현이 '우리 편'이기 때문에? 노무현의 FTA에는 '진정성'이 있어서?

하지만 그들은 쉽게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김어준이 다르다고 했다며 나꼼수를 듣고 판단하겠다는 사람이 있고(나꼼수의 위대함!), 헛소리가 가득한 트위터 타임라인의 글들을 RT하며 정신승리하는 사람이 있다. 두 FTA는 다르다고 떠들고 다니던 디피의 어떤 삼돌이는 뭐가 달라졌냐는 물음에 "제가 자세히는 잘 몰라서요"라는 놀라운 대답을 하기도 한다. 그저 깨기 싫은 '믿음'일 뿐이다. 여기서 할 수 있는 최선은 빨리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이다. 노무현이 잘못했다는 걸 인정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그들이 그렇게 증오하는 정동영의 모습이 나에겐 더 좋아 보인다. "솔직히 그때는 잘 몰랐다. 사과한다. 앞으로라도 함께 잘 막아보자." 이렇게라도 해야 반대할 수 있는 명분을 얻을 것 아닌가. 당시 김근태나 최재천처럼 하지는 못했어도 이제라도 정동영처럼 하는 것 역시 가치 있는 일이다. 사람은 반성하고 성찰해야 발전할 수 있다. 만약, 이명박 정부가 미친 척하고 노무현 정부 때 수준으로 되돌리면 그때는 찬성할 것인가? FTA를 찬성하면 찬성하고 반대하면 반대했지, 노무현의 FTA는 찬성하지만 이명박의 FTA는 반대한다는 건 자신이 신앙의 영역으로 들어서고 있다는 선언이나 다름없다. 중요한 건 '노무현'이 아니라 'FTA'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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