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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

김규항

시옷_ 2010. 5. 26. 22:12

진보신당보다 더 급진적인 '노동자의 힘' 같은 단체는 온건한 좌파들에게선 구좌파, 스탈린주의자라는 소리를 듣지만 그보다 더 급진적인 좌파들에게선 기회주의자들이라는 욕을 듣기도 해요. 아까 조갑제와 정형근 씨 이야기도 했지만 진보와 보수의 상대성은 꼬리를 물고 계속되는 겁니다. 그러니 진보와 보수의 구분점도 이념에 따라 많이 다를 수 있어요. 내가 아무리 당신들은 진보가 아니라고 말을 해도 노무현이나 유시민 같은 분들은 '그건 당신이 지나치게 비현실적인 좌파라서 그런 것이고, 우리는 분명 진보 세력이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테고요. 그렇다면 가장 일반적이고 보편타당한 구분점을 정해야 할 텐데요. 오늘 우리 사회의 현실에서 결정적으로 작용하는 게 뭔가를 생각해보면 답이 나오겠죠. 그게 신주유주의라고 생각합니다. 신자유주의를 지지하는 사람이냐, 반대하는 사람이냐, 이걸 분명하게 인정할 수 있는 사실이죠.

30년 전 군사독재 시절로 돌아간다는 말을 할 만한 일들이 실제로 많이 일어났어요. 그러나 좀 더 신중히 생각해보면 그런 말들은 사실이 아니고 매우 위험합니다. 이명박 정권을 공격하기 위해선 좋은 말 같지만 그 말이 우리 스스로를 후퇴시키니까요. 거듭하는 말이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의 가장 주요한 문제가 무엇인지를 놓치게 된다는 겁니다. 군사독재로 돌아간다고 이야기하고 실제로 그렇게 느낄 만한 무지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지만 그건 시대착오적인 현상인 것이지 실제로 그 시절로 돌아가진 않아요. 초등학생들이 대통령을 쥐박이라고 부르며 노는 시절인데 그게 어디 군사독재 시절입니까.(웃음) 체육관에서 대통령을 뽑지도 않고, 잘렸던 KBS 사장이 복권되기도 하고, 하여튼 어수선한 상황이긴 하지만 정치적 민주주의는 최소한의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요. 그것마저 허물어지는 건 이제 대중들이 용납하지도 않고요. 시대착오적인 일들은 말 그대로 시대착오적인 일로 구분해서 공격하면 되거든요. 그런데 그런 시대착오적인 일들에 흥분해서 군사독재와의 싸움으로 돌려버리면 체제의 함정에 걸려드는 거죠. 정리하자면 군사독재가 아니라 군사독재풍의 신자유주의가 존재하는 것이고, 그걸 한쪽에서 진보풍의 신자유주의 세력이 보완하는 겁니다. 신자유주의 지배 체제를 흉한 부분과 덜 흉한 부분, 둘로 나눠 한쪽은 보수로 한쪽은 진보로 보는 구도가 계속되는 한 한국 사회에 희망은 없습니다.

인터넷에서 본 글인데요, 나보고 "이 인간은 만날 신자유주의, 신자유주의 해서 사람을 싫증나게 만든다"고 적어놨더군요. 가장 싫증나는 건 나 자신이라는 사실도 알아줬으면 좋겠어요.(웃음) '신주유주의만 해결되면 모두 행복해지는가'라고 내게 묻는다면 물론 아니라고 대답하겠죠. 인간은 복잡한 존재니까. 그러나 오늘 우리 삶을 규정하는 거의 모든 게 신자유주의인 건 분명해요. 신자유주의는 양극화니 비정규니 공공부분 민영화니 88만 원 세대니 하는 거대한 변화만 만들어낸 게 아니라 우리의 정신과 영혼까지 변질시키니까요. 그걸 증명하는 질문을 하나 해보죠. 지금 한국의 아이들이 제대로 놀기는커녕 감옥의 수인들처럼 생활하고 있다는 것, 또 그렇게 생활하는 건 지구상에서 한국 아이들뿐이라는 건 지승호 씨도 인정하시죠? 그걸 인정조차 안 하면 정말 나쁜 사람이죠?(웃음) 자, 그렇다면 아이들을 그렇게 생활하게 하는 건 누군가요? 이명박 정권과 그 일당인가요? 그리고 이명박 정권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아이들을 좀 더 인간적이고 자유롭게 생활하도록 해주기 위해 그들과 싸우고 있나요? 아이들을 그렇게 생활하게 하는 건 이명박 정권이 아니라 바로 아이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고, 아이를 위해 자신들의 인생을 올인한다는 부모들입니다. 이명박 정권을 반대하고 이명박 정권의 시장주의 교육이 우리 아이들을 죽인다고 외치면서도, 그들의 가치관으로 아이들을 키우는 우리들 말입니다. 신주유주의 귀신에 영혼이 저당 잡힌 우리들의 모습이죠. 이런 지경인데 만날 이명박 정권에 대해 욕이나 하고, 30년 전 군사독재 시절로 돌아갔다며 성토하고, 반한나랑 연대하면 뭘 하겠어요.

지금은 교육 문제가 지배 체제의 정수라는 생각을 해요. 교육 문제가 좌파나 진보 운동을 하는 사람들까지도 장악하고 있어요. 이명박 정권을 반대하는 구획은 굉장히 넓잖아요. 노무현 정권보다 약간 더 오른쪽에서 극좌까지 포함된다고 보는데요. 미디어 악법 같은 것도 꽤 많은 실천적 반대가 있죠. 그런데 교육 문제는 그렇지 않아요. 공적인 토론이나 성명서를 내는 행위 말고 실제 자기 아이의 교육 문제 말이에요. 그 문제만큼은 반이명박 세력은 물론 극좌까지도 거의 포괄하고 있어요. 그렇다면 교육 문제가 바로 문제의 정수인 거죠. 촛불시위 때 "우리 안의 이명박" 같은 이야기를 했더니 '김규항 너는 서울광장에서 뭘 했느냐'는 사람도 있었어요. 고래 식구들은 매일 저녁 광장에 나갈 여유도 없었거든요. 나는 <고래가 그랬어>의 편집과 발행이 우리 사회의 최전선에 있다고 생각했어요. "쥐박이 물러가라" 소리치다가 자정께 아이에게 전화를 걸어서 "너, 학원 안 갔어?" 하는 곳이 전선일까요? 인텔리들이 특목고 비판하지만 자기 아이가 특목고 들어가면 좋아들 해요. 아이가 여상이라도 가 봐요. 창피해서 고개를 못 들어요.(웃음)

현 정권을 보고 있으면 환장하겠다는 심정은 이해해요. 나라고 안 그렇겠어요?(웃음) 그런데 이명박 정권에게 당하기 전부터 김대중 정권에게 당하고 노무현 정권에게 당해온 사람들의 입장을 함께 생각해야 합니다. '이명박 정권만 욕하는 것'과 '이명박 정권을 욕하는 것'은 전혀 다르죠. 이명박 정권만 욕하게 되면 김대중과 노무현 정권으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자들은 숭고한 민주주의의 투사로 부각될 수밖에 없어요. 그건 무슨 말이냐면, 신자유주의 체제가 이명박 정권과 같은 무식한 정권을 잃는다 해도 다시 김대중이나 노무현 수준의 정권으로 안전하게 회귀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일입니다. 10년의 경험을 송두리째 무위로 돌리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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