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벚꽃을 보았으니…
기다리지 않아도 봄은 온다지만, 더디 오는 봄을 데리러 그예 길을 나서는 마음도 있는 법이다. 이 마음의 주인에게 봄은 앉아서 맞이하는 것이 아니라 나서서 끌어오는 것이다. 윤대녕의 단편 <상춘곡>의 사내 이야기다.
"열흘 전, 실로 7년 만에 당신과 해후했을 때 당신은 내게 벚꽃 얘기를 하셨습니다. 4월 말쯤 벚꽃이 피면 그때 다시 만나자고 말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때까지 기다릴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미리 남으로 내려가 벚꽃을 몰고 등고선을 따라 죽 북향할 작정이었던 것입니다."
사내는 지금 고창 선운사에 내려와 있다. '벚꽃을 몰고 올라갈 작정으로' 웅크리고 있는 것이다. 벚꽃이 양 떼도 아닌 터에 이 무슨 말?
사내가 선운사에 내려온 것은 4월의 첫날. 그로부터 다시 선운사를 떠나는 4월10일까지 열흘 동안 그는 '당신'에게 편지를 쓴다. 그 편지 속에 20대 중반에서 30대 중반에 걸친 두 사람의 지난 10년 세월이 실타래처럼 풀려 나온다.
"하지만 때가 좋지 않잖아요. 하필이면 왜 이런 때 사람한테 승부를 걸어요."
두 사람이 처음 만난 1987년 2월 중순의 어느 새벽, 갑작스러운데다가 다소 거칠게 사랑을 고백하는 사내에게 '당신'이 항의조로 한 말이다. 남자는 제대하고서 4학년 1학기 복학을 앞둔 처지이고 여자는 영문과 대학원생이자 '현역' 운동권이다. 여자가 말하는 '하필 이런 때'가 박종철 고문치사에서 6월항쟁으로 이어지는 날들을 가리킨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사랑에 눈먼 남자에게 '이런 때'란 다만 사랑할 때일 뿐 다른 아무런 때도 아니다. 사랑에 모든 것을 걸겠노라는 그의 기세는 나름대로 성과로 이어져서, 두 사람은 그해 봄 여자의 고향인 고창 선운사 석상암에서 뜨겁게 몸을 섞는다.
그러나 시절은 그들의 사랑에 호의적이지 않았다. 변혁을 향해 용광로처럼 들끓는 사회 분위기 속에 분주하게 뛰어다니는 여자와, 스스로 "나는 그 시절 시대에 기여한 바가 없다"는 남자가 사랑을 근거로 만나기란 쉽지 않았다. 게다가 여자는 그 와중에 석상암에서 생긴 남자의 아이를 떼어야 했다. "나를 사랑한다던 자는 내 인생의 가장 어려운 시기에 옆에 없었다"고 여자가 말할 법도 하지 않겠나. 이런 두 사람의 사랑을 '시대'와 '사회'를 사이에 두고 어긋난 사랑이라 부르자.
그 다음은 후일담이다. 여자는 남자를 대신해 낙태를 위한 병원행에 동행했던 운동권 선배와 결혼한다. 그러나 시절은 다시 바뀌고, 다른 '기회'를 좇는 남편에게 이혼을 당한 채 지금은 아이 하나를 데리고 혼자 살고 있다는 이야기….
그러니까 두 사람은 피차 생채기를 안은 채 7년 만에 재회했던 것이다. 이들이 지난 상처를 봉합하고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선운사에서 보낸 사내의 열흘은 그 가능성을 향한 탐색의 시간인 셈이다.
열흘이 지나 사내가 선운사를 떠날 때까지도 벚꽃은 아직 피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의 '봄 몰이'는 실패한 것인가. 그렇지가 않다. 선운사 앞 식당에서 마주친 시인 미당한테서 사내는 '한 소식'을 얻어듣는다. 선운사 만세루가 불에 타 무너지자 사람들이 타다 남은 목재를 조각조각 이어서 건물을 다시 세웠다는 얘기다. 사내의 시야가 트인다.
"벚꽃도 불탄 검은 자리에서 피어나는 게 더욱 희고 눈부시리라 믿습니다."
이제 그는 더 이상 개화를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그는 이미 만세루의 어둠 속에서 하얗게 흐드러진 벚꽃을 보았으니까. 그의 꽃은 불탄 검은 자리에서 오히려 환하게 피어나는 종자니까.
최재봉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