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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인터뷰

원일 (2015)

둥구 2016.12.30 11:14

가을이다. 여름을 잇는 또 한 번의 페스티벌 계절이다. 당장 이번 주말부터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을 시작으로 다양한 페스티벌이 열릴 예정이다. 여기에 낯선 이름의 음악제 소식이 더해져 들려오기 시작했다. 전남 구례 지리산에 자리한 화엄사에서 열리는 화엄음악제. 벌써 10회째라 하는데 아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참여하는 아티스트들 역시 그리 대중적이진 않다. 하지만 'Hwaeom Spiritual Music Ritual'이라는 영문 표기에서 알 수 있듯 '영성'에 대한 강조와 '장소'의 특수성으로 궁금증을 커지게 만들었다. 화엄음악제의 총감독인 원일을 만났다. 그는 국악계에서 최고의 자리라고 할 수 있는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예술감독과 한국예술종합학교의 교수직을 그만두고 화엄음악제의 총감독으로 매진하고 있는 참이었다. 또 어어부 프로젝트의 원년 멤버였으며 푸리, 바람곶 등의 작업을 통해 실험적인 음악을 들려줘온 현역 음악가이기도 하다. 궁금증은 두 배가 되었다. 화엄음악제와 원일 감독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왔다.

김학선: 먼저 화엄음악제를 생소해하는 사람들이 많을 거 같다.

원일: 화엄음악제는 내 젊은 시절 멘토 중의 한 명이었던 순천대학교의 박치음 교수님이 화엄사의 종삼 스님과 함께 만든 음악제다. 박치음 교수님이 원래는 운동권 쪽에 계시면서 민중음악 많이 만드셨던 분인데 이제는 좌우 대립의 시대가 아니라 영성을 추구해야 하는 시대라는 생각으로 처음 이름을 화엄국제영성음악제라 짓고 출발을 했다. 나에게는 음악을 맡아 해달라고 하셔서 1회부터 7회까지는 음악감독으로 참여했다. 7회까지 박치음 교수님이 총감독으로 계셨는데 7회 제목이 '내려놓으니 아름답구나'였다. 그러면서 총감독 자리를 나에게 물려주고 8회부터 내가 총감독을 맡으면서 올해가 세 번째가 됐다. 1회 때부터 관여를 해왔고 대학교 때 멘토께서 물려주신 거니까 보기 드물게 멘토에게 이양을 받은 사례가 된 음악회라 할 수 있다.(웃음) 처음에는 영성이란 말이 되게 부담스러웠다. 그 전까지는 생각해본 적이 없는 말이었다. 되게 부담스럽고 의식을 많이 했는데 내가 맡으면서부터는 화엄이란 말 자체가 영성을 얘기하는 것이어서 영성이란 말을 또 붙이는 것도 부자연스럽고 국제음악회란 말도 좀 이상하고 해서 둘 다 떼버렸다. 그래서 지금은 화엄음악제가 됐다.

김학선: 영성음악이란 말도 생소하다.

원일: 처음에는 잘 몰랐는데 요가나 이런 걸 할 때 필요한 음악이 있고 마켓이 또 있더라. 처음엔 그런 아티스트들이 많이 왔다. 이 지점이 나와 총감독님과 갈리는 부분이었는데 일단 총감독님은 지금 현장에서 활동하는 전문 음악가가 아니지 않나. 불러오는 아티스트들을 보니까 음악계에서 잘 모르는 사람들인데 끝없이 단순한 챈트(chant)만을 반복하는 걸 보며 속으로 '요가 반주음악' 같다는 생각을 했다. 처음에는 그걸 의아해하면서 그런가보다 하다가 내가 맡으면서부터는 음악을 최고로 잘하는 게 가장 영성적인 것 아니냐는 신념으로 그런 음악들을 배제했다. 음악에 충만히 빠져서 사람들에게 뭔가를 줄 수 있는 음악가가 진짜 영성음악가라고 생각한다. 그럴 때마다 내가 예로 드는 게 키스 자렛(Keith Jarrett)인데, 재즈도 그렇고 클래식도 그렇고 국악도 마찬가지다. 산조가 우리가 추구해야 할 영성음악 중 하나였다는 식으로 다시금 자각하는 계기도 됐다.

김학선: 음악감독에서 총감독이 되면서 부담감도 더 커졌을 것 같다.

원일: 어떻게 보면 올해가 내가 제대로 총감독이 무엇이며 무엇을 해야 할지를 자각하고 뉘우친 첫 해인 것 같다. 인수인계를 받을 때도 나는 계속 다른 일을 하고 있었다. 메인이 아니었던 거다. 그냥 그 기간이 되면 하는 거였고, 임박하면 이것저것 지시하면서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8, 9회를 해왔는데 그게 아니더라. 신경 쓸 게 너무 많고 또 내가 그만큼 신경을 안 쓰면 더 악화돼버린다. 그런 걸 경험하고 또 내가 큰 변화의 시기를 겪었다. 나는 그때까지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예술감독과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라는 자리를 다 쥐고 있었다. 국악 신(scene)에서 최고의 자리란 자리는 다 가지고 있었던 셈인데 이렇게 살다가는 창작자로선 큰일 나겠다 싶더라. 국립국악관현악단에서 내년 프로그램을 짜며 누구한테 위촉을 할까 고민을 하는데 그러다보니 내가 프로그래머가 된 것 같았다. 좋은 사람을 고르는 것도 정말 중요하지만 나는 아티스트라고 생각을 하는 사람인데 계속 이렇게 하다가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이상은 내가 추구하는 것에서 찾아야 하는데 내가 추구하는 것과 내가 행동을 해서 생산해내는 것이 딱 정체돼있었다. 계속 감독을 하고 프로그램을 짜고 관현악단을 위해 헌신하고 있다, 그런데 자리로만 보자면 최고의 자리다, 여기에서 계속 이건 아닌 것 같다는 스스로의 문제제기가 시작된 거다. 국립극장에서는 자꾸 재계약하자고 하고 학교에서는 자꾸 돌아오라고 하고 학생들은 선생님 언제 오시냐고 하는데 나는 계속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걸 끊어버리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던 변화의 시기였고, 딱 끊고 나서는 아무 것도 아닌 사람이 된 거다. 어떤 것도 아닌 사람이 되고 아무 데도 매이지 않는 사람이 되고 보니까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가 다 보이더라. 다 끊으면서 이거(화엄음악제 총감독)를 안 내려놓는 이유는 무언지 생각해봤는데 그만큼 내가 이걸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거였다.

김학선: 10회째라고 하는데 사실 나도 처음 들었다. 그래도 올해는 홍보를 하는 것 같긴 한데 그동안은 너무 조용히 행사를 진행해온 것은 아닌가?

원일: 이게 예산문제이기도 하고 나의 문제이기도 한데 이걸 어떻게 적극적으로 외부에 알릴지 고민을 덜했던 것 같다. 올해 모든 걸 바꾸면서, 내가 함께했던 사람들을 바꾸지 않으면 또 그대로 갈 것 같다는 생각에 고민을 정말 많이 했다. 그래서 함께했던 사람들에게 나는 바꿀 거고 어떤 사람들과 할지는 아무 것도 모르겠는데 일단 기다려달라고 미리 알려줬다. 적당한 사람들을 못 찾아서 몇 개월을 보냈는데 막판에 어떻게 연결이 돼서 지금 많이 바뀌게 됐다.

김학선: 화엄음악제를 영문으로는 'Hwaeom Spiritual Music Ritual'이라 표기하고 있다. 이 '영성(spiritual)'이란 말도 일반 대중에겐 생소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원일: 나도 배워가고 있는 중이다. 일상생활에서 영성을 찾을 수 있는 건 죽음을 맞이했을 때다. 옛날에 동네를 중심으로 살 때는 마을공동체 안에서 모든 걸 체험할 수 있었다. 통과의례 같은 것. 통과의례는 삶과 죽음, 입문과 이별, 이런 것들을 말하는데 이걸 우리는 제의라고 하며 경험해왔다. 그런데 지금 현대사회에서는 이런 게 말끔하게 삶으로부터 치워졌다. 지금은 상조회사에서 다 알아서 하지만 예전에는 이런 제의가 비근하게 있어왔다. 죽으면 조등을 달고, 애가 태어나면 고추를 달고 하는 것들. 집 대문이라는 게 그런 걸 알리는 일종의 갤러리였던 셈이다. 예를 들어 세월호 참사 같은 것이 전 국민적으로 영성에 대한 체험을 한 거라고 본다. 그것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영성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있다. 내가 죽었을 수도 있다 생각하고, 죽음에 대한 동정심이나 공감대가 있을 텐데 나는 그것을 영성이라고 본다. 인류가 추구해야 하는 공동선(善)이 있다거나 우리 생활에서 추구해야 하는 공동선이 있다면 그것에 대해서 한 번 생각해보자는 거다. 굉장히 솔직하게 말하자면 결국 양심의 문제다. 안에 있는 양심을 실천하는 것, 이것이 영성에 대한 핵심적인 얘기라고 생각한다.

김학선: 아까도 잠깐 얘기했지만 그렇다면 영성음악은 어떤 건가?

원일: 나는 거기에 대해서 명확한데, 음악가 스스로가 음악에 온전히 자신을 담아내지 않으면 음악이 완성되지 않는다. 그래야만 좋은 음악이 될 수 있다. 내가 생각하는 영성음악은 그런 거다. 그것은 연주하는 사람의 문제이기도 하고 작곡하는 사람의 문제이기도 하고, 결국 태도의 문제다. 유명한지 안 유명한지는 다 필요 없는 거고, 무대 위에서 소리에 모든 것을 담아낼 수 있다면 그 사람이 영성음악가라고 생각한다. 그럼 사람들은 다 오픈돼있고, 단박에 사람들을 끌어당긴다.

김학선: 그럴 수 있다면 자연스레 듣는 사람의 마음도 끌어 모을 수가 있겠다.

원일: 물론이다. 예를 들어 현대음악 작곡하는 진은숙 같은 사람의 얘기를 들어보면 이 사람의 스피리추얼리티가 대단하다. 말하는 수준이나 수상 연설할 때 보면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의 음악이 일반인이 듣기엔 듣기 어렵다고 생각하겠지만 차원이 높은 음악이다. 이건 차원에 대한 얘기이기도 한데 영성을 경험하고 실천하고 추구하는 사람들은 낮은 레벨의 의식 수준이 아니다. 높은 봉우리에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에 웬만한 건 꿈쩍 안 하고 큰 일이 있을 때 실천할 수 있는 비전이 있는 사람들이다. 아티스트도 마찬가지다. 연습을 통해서, 기량을 통해서, 추구하는 걸 통해서, 어떤 봉우리에 올라서서 그 차원에서 음악이란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계속해서 그걸 추구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다.

김학선: 그래서 이번 음악회 주제가 '심금(心琴)'인 건가?

원일: 그렇다. 영성음악에 심금처럼 딱 맞는 제목도 별로 없다. '심금을 울린다'고 할 때는 말 그대로 공감하는 것 아닌가. 심금=공감인데, 남의 기쁜 일에 대해서, 남의 고통에 대해서 공감능력이 큰 사람들이 영성이 많은 사람들이다. 굉장히 공명이 잘 되는 사람들이다.

김학선: 화엄음악제를 음악 페스티벌의 하나로 봐도 좋은 건가?

원일: 페스티벌인데, 기존의 페스티벌이 일상의 스트레스를 풀고 즐기는 발산의 페스티벌이라면 이 페스티벌은 발산이 아니라 수련을 통해 일종의 힐링이 될 수 있는 페스티벌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아티스트의 발언권을 살리려고 한다. 세월호 때 극명하게 나타나지 않았나. 그때 음악 페스티벌을 다 취소시켜버렸는데, 우리 음악제에는 이번에 디마 엘사예드라는 레바논의 아티스트가 온다. 그녀를 "약자의 연약함, 아름다움의 가치, 그리고 진정한 자유를 꿈꾸는 자들의 목소리"라고 소개하는데 그게 영성음악에 가장 부합한다고 생각한다. 또 그녀가 우리에게 주려 하는 메시지이기도 하고. 궁극적으로 음악은 마음속의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이지만 때로 그것은 저항정신이기도 하다. 왜 우리는 다른 이들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하는가, 이 아픔을 음악을 통해 알리고 싶다는 장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된다고 생각하고. 'Spiritual Music Ritual'의 'Ritual'은 다 같이 눈 감고 명상하자는 게 아니라 무엇에 대한 명상인가, 우리 삶으로부터 가까운 어떤 것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자는 거다.

김학선: 외형적으로 바뀐 부분은 또 뭐가 있는가? 행사 시간도 밤으로 바뀌었던데.

원일: 일단 스태프가 바뀌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다는 걸 이제야 실천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여태까지 한 번도 밤에 해본 적이 없는데 음악을 하고 듣기에는 밤이 좋지 않은가. 음악을 통해 그 영적 깊이를 전달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시간대에 할 수 있게 돼서 나도 기대가 된다. 밤에 하다 보니까 너무 추우면 안 돼서 예년에 비해 시기를 당겼는데 그러다보니 쟁쟁한 페스티벌들과 겹치게 됐다.(웃음)

김학선: 프로그램 순서를 보니까 브릿지로 공기, 물, 돌과 쇠, 나무를 음악으로 표현하는 퍼포먼스가 있는 것 같다. 이게 어떻게 표현이 될지 궁금하다.

원일: 메인 무대가 있으면 메인 무대에서 확장된 공간에서 연주를 한다. 랜드스케이프가 달라지는 거다. 관객들이 무대를 보다 산을 보게 되는 건데 훨씬 더 큰 랜드스케이프에서 스케일이 달라지는 경험을 하게 될 거다. 그거를 일본 타악의 대가인 타카다 미도리가 한다. 그럴 만한 사람이 하는 거다.

김학선: 야외무대에서 노래를 듣는 건 이제 흔한 일이 됐지만, 정말 산속 자연에서 음악을 듣는 기분은 어떨지 기대되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하다.

원일: 일단 화엄사라는 공간 자체가 너무 좋다. 종삼 스님 말씀으로는 본인이 명산대천의 절이란 절은 다 다녀봤는데 이렇게 기운이 활발발한 곳은 없다고 하시더라. 지리산에 자리를 잡아서 엄청나게 웅장하고, 우리가 알고 있는 해인사, 불국사, 통도사 같은 아름다운 절들이 나름대로 소박하다면 화엄사는 스케일이 다르고 기운이 활발발하다. 거기에서 음악을 하면 일단 뮤지션이 바라보는 시선이 하늘과 봉우리다. 관객은 각황전이라는, 황제가 깨달음을 얻었다는 최고의 목조건물을 보고 있고, 서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할 거다.

김학선: 참여하는 음악가들이 있는데 역시 대중에겐 낯선 이름이 많다. 섭외 기준 같은 게 있었다면 무엇인가?

원일: 아까 얘기와 같은데, 그 사람이 자기 음악을 하고 있는지가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자기 음악을 해서 하나의 스타일을 만들었느냐를 봤다.

김학선: 참여진을 보면 월드뮤직 페스티벌이라고 해도 될 것 같다.

원일: 맞다. 월드뮤직 페스티벌이라고 할 수 있다. 내년에 더 기대되는 게 네덜란드 최고의 리코더 연주자가 오기로 확정이 됐고, 스페인에 파티마 미란다(Fatima Miranda)라고 엄청난 무당 같은 여자가 있는데 그 사람도 올 예정이다.

김학선: 대중은 그 사람들을 잘 모를 텐데, 모르고 와서 봐도 충분히 만족할 거라고 생각하나?

원일: 아마 쇼킹할 거다. 파티마 미란다 같은 경우는 그 에너지가 정말 대단하다. 우리나라 만신들이 작두 타는 것 같은 그런 기운이 느껴진다.

김학선: 올해 출연진 가운데 이 아티스트는 꼭 봐야 한다 추천을 한다면?

원일: 이바 비토바(Iva Bittova)는 정말 천재적인 재능이다. 체코 출신으로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바이올리니스트인데 체코의 전통음악을 아주 잘 계승하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바이올린은 오스트리아나 독일의 클래식 음악으로만 알고 있는데, 폴란드나 체코의 바이올린은 폴카처럼 완전히 자신들의 음악을 하는데 쓰인다. 클래식한 바이올린이 아니라 다른 바이올린을 하는데 그게 재미있기도 하고 학구적이기도 하다. 유명세에 비해서는 한국에는 거의 알려져 있지가 않다. 같이 오는 이반 지포린(Evan Ziporyn)이라는 베이스 클라리넷 하는 사람도 미국 현대음악 쪽에선 엄청 유명한 사람인데 우리나라에선 아무도 모른다.(웃음) 안타깝다. 그 정도가 이번에 오는 사람들 중에선 레벨이 있는 사람들이고, 존 케이지(John Cage)를 연주할 토마스 슐츠(Thomas Schultz)는 피아니스트로서는 현역 가운데 아주 엣지있게 활동하고 있지는 않지만 일관되게 존 케이지 음악을 실천하고 있는 사람이다. 앞으로 작곡가들도 한 명씩 소개할 건데, 이번엔 나효신 씨다. 실험적이면서도 기독교적인 영성이 뭔지 두 가지를 다 녹여낸 음악을 만든다.

김학선: 그동안 여러 가지 일들을 하고 계셨는데 이제 이 총감독 자리가 메인이 된 건가?

원일: 메인이라기보다는 이것만은 내려놓지 못하고 더 해야겠다는 것이다. 나에겐 공동의 선을 추구하려는 게 있는데, 나에겐 이게 공동의 선이다. 음악 하는 사람들한테, 음악을 좋아하는 팬들한테, 수행을 하는 중들한테, 자연에게, 더 나아가서 인류에게, 내가 하는 이 일이 궁극적으로 좋은 일이냐, 스스로에게 물어봤을 때 맞다는 결론을 내렸다. 나는 이걸 통해서 경제적으로 얻는 게 하나도 없다. 그저 총감독이라는 직책을 통해서 내가 욕망하는 것이 나쁜 게 아니라는 거다. 그래서 나에게는 납득이 된 거다. 그리고 이것이 나의 영성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고.

김학선: 아까도 잠깐 얘기했지만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예술감독 자리도 그만두고, 교수직도 버렸다. 결국 이건 창작 활동을 위해서였나?

원일: 복합적인데, 창작에 관한 것도 있었고 또 다른 삶을 꿈꾸기도 했다. 극단적으로는 음악을 안 하는 삶도 생각해봤는데 그건 안 될 것 같다는 결론에 이르렀고, 지금의 시스템이 아니라 다른 시스템에서 음악을 해보려 하는데 내가 스톱하지 않으면 다른 시스템은 오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스톱을 한 거고, 지금 시스템 안에서 굴러가며 걱정하는 사람들은 다 이렇게 말한다. "왜 그랬냐?" 내가 나와 봐야 알 수 있는 걸 그들에게 어떻게 설명하겠나. 내가 나와서 자유롭게 선택하면서 얻어지는 게 있는데 그걸 말로 하기는 힘들다.

김학선: 최고의 자리에서 안락함과 타성에 젖을 거라는 경계심도 있었나?

원일: 당연하다. 내가 놀이를 되게 좋아하는데, 놀이에서 새로운 규칙이 발견되는 순간은 뭔가 깨지거나 충돌되거나 어떤 위험요소가 있었을 때다. 창작도 의외의 것에서 패턴이 딱 깨지곤 한다. 이 외의성이라는 것은 규칙적이고 안정적인 것에선 생기기 힘들다. 야생의 숲으로 들어가서 길을 만들지 않는 이상은 만날 길만 있는 곳으로 가는 거다. 그게 나의 모토이긴 했는데 나이가 먹어가면서 어쩔 수 없이, 또는 지금의 자리가 자신에 대한 보상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작품에 대한 나의 대답은 아니었다. 내가 1집 [Asura]를 낸 게 1997년이다. 그 뒤에 푸리나 바람곶 활동도 했고 놀았다고 할 순 없지만, '내 것'에 대해서 물어보면 만족스럽지가 않다.

김학선: 스스로 국악인이라고 생각을 하나?

원일: 그거 자체를 깨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악 세계에 절여 있다가 자유를 선택한 사람이다. 일단 이런 게 좋다. 정해진 스케줄이 없으니까 뭘 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내가 정하는 건데 알다시피 그게 어렵지 않나.(웃음) 내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하는 거다. 전자음악적인 것도 공부하고 있고, 내 안에 내재돼있는 전통성과 내가 지금 살고 있는 당대에서 추구하고 있는 컨템포러리를 조화시켜야 할 것이고, 내가 음악을 통해서 영성의 말을 갖다 붙이는 것에 대해 계속 공부하고 있는 중이다. 아마 내년 하반기쯤에는 곡을 하나 발표할 것 같다. 대중을 향해서.

김학선: 컨템포러리 얘기도 했는데 국악이 대중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나?

원일: 나는 오히려 빅뱅 같은 팀이 하는 게 그런 거라고 생각한다. 그들 음악에는 기묘한 국악적 코드가 심어져있다. 서태지가 그랬듯이 빅뱅과 지드래곤이 그러고 있다. 그 친구가 만든 리듬을 들어보면 국악을 안 배우고는 못 만드는 몇 가지가 있다. 알고 보니까 국악예고 출신이더라. 난 아예 국악에 의한 대중화를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제발 국악에 대한 사명감을 버렸으면 좋겠다. 대중에게 들려주기 위해 모든 걸 쉽게쉽게 재미있게 만드는데 자기도 모르게 했던 것들이 나오는 게 가장 좋은 거라 본다.

김학선: [Asura] 이후 새 앨범은 나오지 않고 있다. 계획은 없나?

원일: 계속해서 생각하고 있다. 난 지금 국악을 한다는 의식도 없고 그냥 내 음악을 하는 거기 때문에 여기엔 별놈의 악기들과 별놈의 스타일이 다 있다. 스케치를 계속 하고 있는데 그중에서 어떤 걸 집중해서 해야 할 것이다. 뭐라고 말할 순 없지만 대중을 향해서 "같이 들어봐요. 같이 들을 수 있잖아요"라고 말하는 지향점이기 때문에 현학적이거나 나를 지지해주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지 않고, [Asura]에서 <달빛 항해> 같은 그런 지점의 곡들을 할 것 같다. [Asura]를 만들 때는 국악, 퓨전, 크로스오버 이런 강박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렇지가 않다. 그때도 물론 내 것이었지만 음악 자체, 장르 자체, 국악 자체에 대한 사명감 같은 것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게 없다. 내가 지금 세상을 어떻게 보고 있고, 이 세상에서 이런 소리를 같이 즐기자는 걸 던질 거기 때문에 국악이 들어갈 순 있겠지만 절대 국악을 내세우지는 않을 거다.

김학선: 화엄음악제 총감독으로선 화엄음악제를 어떻게 만들고 싶나?

원일: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음악제 몇 개가 있을 것이다. 장소성에서 화엄음악제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 추구하는 음악제 성격이 엔조이나 스트레스 해소 이런 게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다 같이 좋은 쪽으로 갈 수 있을까를 생각하고, 한국의 역사에 가장 에너지가 농축돼있는 지리산이라는 영적인 산에, 가장 높은 수준의 철학이 담겨있는 화엄이란 단어가 들어있는 절에서 하는 이 음악회야말로 한국을 대표하는 음악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지금은 하루 하는데 내년부터는 3일 정도로 기간을 늘이고 구례와 지리산의 말사들에서 깊이 있는 음악회를 열고 싶다. (2015/미디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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