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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인터뷰

정차식 (2012)

둥구 2016.11.23 15:05

김학선: '이매진 어워드'에서 유일하게 [황망한 사내]와 [격동하는 현재사], 두 장의 앨범을 후보에 올렸다. 처음 이야기 들었을 때 기분이 어땠나? 

정차식: 전에 [황망한 사내]는 웬만한 데 다 오르고 그랬으니까 뭔가 신빙성이 있었는데, [격동하는 현재사] 같은 경우에는 너무 많이 갈리고 기존에 [황망한 사내] 들었던 분들도 의아해하고 그랬기 때문에 전혀 그럴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웃음) 그래서 두 개 다 올랐다고 그래서 되게 신기했다. 

김학선: 수상 가능성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이 있나? 

정차식: 전혀 안 했다. 행사 첫날에 노미니 시상식도 하고 리셉션도 하고 그러지 않았나. 그때 같은 테이블에 레드 불 관계자들이 앉아있었다. 그분들이 두 장이 오른 것에 대해 얘기를 해서 나는 절대 아니라고, 레드 불하고 이미지가 어울리는 건 이디오테잎(Idiotape)이나 이런 팀들이니까 저쪽에 가보시라고 얘기를 했다. 나는 인지도도 부족하고 절대 될 일이 없다고 하면서 저 사람들이 이디오테잎이라고 가리켜주고 그랬다.(웃음) 나는 일단 두 장의 앨범이 올랐다는 사실 자체가 의아한 부분이었기 때문에 전혀 수상할 거라 생각하지 못했다. (편집자 주:이매진 어워드 '올해의 앨범' 수상자가 세계 최대 규모의 음악 축제인 '사우스 바이 사우스웨스트(SXSW) 페스티벌'에 참여할 경우 후원사인 레드 불에서 1천만 원의 금액을 지원한다. 그래서 행사장에는 레드 불 관계자들도 참석해있었다.) 

김학선: 개인적으로는 두 장의 앨범이 올라갔기 때문에 표가 갈릴 거란 생각도 했었다. 

정차식: 그런 생각 자체도 안 했다. 갈리고 나발이고 간에 될 거란 생각을 안 했었기 때문에(웃음). 애초부터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으면 모르겠지만 난 가능성이 아예 없다고 생각을 했다. 그냥 노미니 행사 때 한 장을 받고 또 한 장을 받으러 올라갈 때의 뿌듯함 정도가 있었다. 그래서 내가 올해의 앨범 수상자가 됐을 때 되게 황당했었다. 

김학선: 수상자로 호명됐을 때 뭐하고 있었나? 

정차식: 로다운 30(Lowdown 30)의 (윤)병주 형님하고는 옛날부터 알았기 때문에 병주 형님하고 농담하고 있었다. 내일 어디 갈 거냐고 얘기하고, 빨리 진행하지 왜 이렇게 안 하냐, 뭐 이런 얘기하고.(웃음) 그렇게 농담하고 있을 때 갑자기 "이젠 더 이상 황망하지 않으셔도 되겠네요"란 얘기가 들려서 왜 저런 얘기를 하지 의아해하는데 내 이름이 불렸다. 난 그래서 상 하나가 더 있는 줄 알았다. 네티즌이 주는 상이 있으니까 공로상을 주는 건가 했다.(웃음) 후보에 두 장이 올랐으니까 공로상인가 했는데 올라가보니 '올해의 앨범' 상이었다. 상을 받고서 이게 정말 가능한 일이가 싶었다. 되게 미안하기도 했고.  

김학선: 어떤 점이 미안했나? 

정차식: 이건 내 개인적인 느낌이겠지만, 이매진 어워드에 노미니된 분들이나 음악 하는 분들 대부분이 음악을 업으로 하시는 분들일 거다. 그리고 사명감이나 자부심 같은 걸 가지고 공연을 하고 음악을 해왔을 텐데, 나 같은 경우에는 음반을 내고 활동도 거의 안 했었다. 물론 나에게 섭외가 오지 않는 부분도 있었지만 나 스스로도 그렇게 노력을 하지 않았다. 노출을 위해서 노력을 전혀 안 했던 사람이기 때문에 이 상은 노력에 비해서 결과가 너무 과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한 거다. 음반을 만드는 시점에서 나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나를 위한 음반을 만들었던 거기 때문에 그걸로 됐다고 생각했다. 음악 자체도 대중이나 사람에 대한 얘기가 아니라 1집은 나 스스로에 대한 이야기였고 2집은 내가 뭔가 있어 보이는 사람처럼 꾸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번엔 미친놈 소리나 들어보자는 생각으로 만들었던 거다. 진짜로 "점마, 완전 또라이네"란 소리나 들으려고 낸 건데 상까지 받으니까 너무 미안했다. 병주 형도 그렇고 다들 꾸준히 하고 열심히 하는 분들에 비하면 나는 그냥 객기 부리면서 앨범 두 장 내버린 것밖에 없는 건데 이렇게 상을 받으니까 상당히 미안했다. 

김학선: 그럼 상을 받고 음악을 열심히 해야겠다거나, 이렇게 마음이 바뀐 부분이 있나? 

정차식: 이제 나는 마인드 자체가 그러지를 못하는 것 같다.(웃음) 레이니 선(Rainy Sun) 하던 시절에는 우리 음악으로 세상을 변화시킨다든가 하는 원대한 꿈을 많이 꿨었다. 우리는 어디 나가서도 뒤지지 않아, 우리는 오리지널리티가 있으니까, 하는 자부심도 되게 컸었고. 그 마음이 행동으로도 표출이 됐었다. 가오도 잡고 괜히 무게 잡고 하는. 그런데 그런 것들을 하면서 느꼈던 결론은 "그래도 안 된다"는 거였다. 이걸 한다고 해서 돈을 버는 건 절대 아니었고, 기껏 몇 만 명 모인 록 페스티벌 무대에 서서 그 분위기를 즐긴다거나 공연장 쫓아다니는 여자들 꼬셔볼까 하는 이런 것들을 빼고는 아무 것도 없었다. 솔로 앨범 내기 전에 드라마 음악이나 홍보 음악들을 만들었는데 그때 내가 레이니 선 활동을 했다고 하면 일단 모르는 경우도 많았고 안다 해도 "그거 무서운 음악 아니냐? 그런데 이런 음악 할 수 있겠냐?" 하는 부정적인 인식도 많았다. 나는 레이니 선이 깊이 배인 상처 자국처럼 남아있는 게 되게 싫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안 될 걸 뻔히 알게 됐기 때문에 기대나 거품 같은 걸 싹 거둬내게 됐다. 그래서 새삼 이 나이에 X나 열심히 잘 해봐야지, 하는 그런 생각은 별로 없다. 이렇게 상을 받고 좋은 반응을 얻는 게 부담스럽다. 어제도 술을 마시는데 술집 주인장 분이 팬이라며 음악이 너무 좋다고 말씀해주시는데 그럴 때마다 당황스럽다.(웃음) 내 주변에선 피드백이 전혀 없다. 내 주변에서 아직까지 활동하는 애들은 피아나 내 귀에 도청장치 같은 애들인데 그런 애들은 또 이런 음악을 '알'로 보는 경향이 있다. 나도 그랬으니까. 그렇게 피드백이 없는 상황에서 사람들이 좋다고 그러면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오히려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웃음) 부담스럽다. 

김학선: 처음으로 돌아가서, 정차식이란 이름으로 개인 앨범을 내겠다는 생각은 어떻게 하게 된 건가? 

정차식: 홍보 영상 쪽 일이나 드라마 음악 일을 하면서 정체성이 상실된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원하지 않는 음악을 하고 있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고, '그럼 난 뭔가?'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같이 드라마 음악 작업 하는 형님도 내가 다른 작곡하는 친구들과 다른 맛이 있다면서 "네가 만들고 싶은 대로 만들어라"라고 얘기를 하긴 하지만 나도 드라마를 보는 사람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맞추는 부분이 있다. 이런 장면에선 이런 음악이지, 하는 것들. 특히 홍보 영상은 꽉 짜인 부분이 있고 끝에서는 꼭 감동을 줘야 한다. 이런 뻔한 것들에 좀 스트레스를 받다 보니까 어느 순간에 내 자신에게 '왜 살고 있냐?'라는 질문을 던지게 됐다. 어차피 해온 거니까 이런 걸로 벌어먹고는 사는데 고립된 느낌이 들고 쓸쓸했다. 그리고 어릴 때부터 나이가 마흔쯤 됐을 때 내 음반을 내고 싶다는 생각을 계속 갖고 있었다. 내 목소리로 내 노래를 하고 싶었다. 어떻게 보면 레이니 선 때도 내 노래라기보다는 네 명의 노래인 것 아닌가. 나를 위한 음악, 나를 위로할 수 있는 뭔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작업을 하게 됐다. 그렇지 않으면 서울에 남아서 계속 뭔가를 한다는 게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고향(부산)에 내려가는 게 낫지, 여기서 무슨 영화를 누리겠다고 남아있나, 생각을 하면서 그냥 음반이나 내자고 시작한 거다. 

김학선: [황망한 사내] 냈을 때는 전혀 홍보도 안 했던 걸로 기억한다. 음반도 홈페이지에서만 팔았고. 

정차식: 그렇다. 그러다가 유통을 레이니 선에서 베이스 기타 치는 (최)태섭이가 연결을 해줘서 정식 유통이 된 건데, 솔직하게 뭔가 부각되는 것도 되게 싫었다. 약간 창피하단 생각도 들었고. 내가 보이고 싶지 않아 하는 부분까지 음반에서 다 보이는 것 같아서 별로 알리고 싶지 않았다. 내가 이런 걸 냈는데 사고 싶은 사람은 사라, 하지만 이걸 가지고 홍보하고 싶지는 않다, 이런 생각이었다. 생각을 정리해서 이런 음반을 하나 내고, 난 내 길로 돌아서야지 했던 거다. 또 벌어먹고 살아야 하니까. 모르는 사람들은 [황망한 사내]가 한국대중음악상 후보로도 오르고 다음 뮤직이나 네이버 뮤직에서 계속 얘기가 되니까 홍보를 많이 했다고 생각하는데 아무 것도 안 했다. 보통 음반 내면 기자들에게 돌린다고 홍보 시디를 돌리는데 난 그것도 안 했다. 유통사에게 돌리겠다는 걸 보내봤자 듣지도 않을 거 뭐 하러 보내냐, 난 싫다고 했다. 전혀 그런 걸 안 했는데 묘하게 이상하게 그렇게 돌아갔다.(웃음)

김학선: [황망한 사내] 발표 전에 텐고([Ten]go]라는 음반을 발표했었다. 

정차식: 텐고는 의도된 음반이었다. 내가 캡슐로망이라는 말도 안 되는 홈페이지를 하나 냈는데, 이 이름을 걸고 낼 내 첫 음반은 무조건 탱고였으면 하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탱고 스타일로 써놓은 곡들도 있었으니까 여기에 몇 곡 붙이고 해서 이렇게 서두를 던지고 싶다는 생각으로 만든 거다. 목소리가 들어가고 가창이 들어가는 게 아니라 그 전의 나를 전혀 느낄 수 없는 음악을 먼저 던져놓고 시작하고 싶었다. 그것마저도 아무런 홍보 없이 냈다. 향뮤직에 음반 맡겨놓고 나 몰라라 했다. 하지만 그게 원동력이 된 게, 많은 분들이 홈페이지에서 음반을 사셨고 향뮤직에도 매주 20장씩 갔다 놨는데 잘 나갔다. '이게 왜 이러지?'라는 생각도 드는 한편으로, 거기서 약간 용기를 내서 그렇다면 지금 내가 이 나이에 할 수 있는 나의 얘기를 가지고 지금 내가 철저하게 느끼고 있는 감정들을 노래로 만들어서 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됐다. 구심점이 된 거다.  

김학선: 그럼 텐고는 앞으로도 계속 나오는 건가? 

정차식: 텐고 음반 들어봤으면 알겠지만 되게 허접하고 막 만들었다. 내가 나이가 좀 더 들고 하면 그때 제대로 하고 싶다. 내 감성과 정말 잘 맞는 것 같아서 애착을 갖고 있는 장르이다.  

김학선: 처음 [황망한 사내]를 만들 때 어떤 음반을 만들고자 한 건가? 장르적으로든, 정서적으로든. 

정차식: 내가 음악을 처음 시작했던 동기가 시인과 촌장이나 동아기획의 음반들이었기 때문에 계속 그런 목가적이면서 또 울컥하게 만드는 음악들을 동경해왔었다. 레이니 선 할 때도 그랬었고, 그래서 1.5집인 [유감]이 약간 그런 식으로 나왔던 거다. 그래서 포크로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출발을 했다. 출발은 그렇게 했는데 만들다 보니까 장르란 게 무의미해지더라. 굳이 내가 그걸 유지할 필요도 없고 내가 그런 사명감을 가지면서 할 필요도 없는 사람인 것 같아서 나중에는 이것저것 섞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했다. 신나면 책상도 두드리고, 그 소리가 다 들어가면서 음악이 됐다. 순간적인 재치나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다 넣었다.  

김학선: 트랙 수도 많은 편 아닌가? 

정차식: 원래는 더 많았다. 19곡이었는데 나머지 4곡은 홈페이지에서 처음 사신 분들에게 스페셜로 드렸다. 원래는 투 시디로 낼까 하다가 처음 내는데 투 시디는 진짜 미친 생각인 것 같아서 추려서 한 장으로 내게 됐다. 앨범 나오는데 딱 3개월 걸렸는데 그 뒤에 또 드라마 음악 작업 잡힌 게 있어서 무조건 그 안에 끝내야 했다. 곡을 빨리 쓰는 스타일이어서 곡 쓰는 건 한 달도 안 걸렸다. 그 뒤에 믹싱하고 마스터링하는데 그게 귀가 되게 피곤한 일이라 그것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렸다. 그 뒤에 디자인도 해야 하고 재킷도 찍어야 하고 하니까 3개월이란 시간이 걸린 거다.  

김학선: [황망한 사내]가 레이니 선으로선 표현하기 어려운 음악이었을 것 같다. 

정차식: 레이니 선으로선 할 수 없는 음악이다. 록 음악이란 게 어쩔 수 없이 기타가 퍼스트가 될 수밖에 없는 음악이다. 리프화돼있는 것들이 나와야 하고, 코드화돼있는 것들이 나와야 하니까. 내 노래가 위주가 되고 나머지는 반주가 되는 음악이어야 하는데, 레이니 선에선 그런 것들을 애들한테 시키기가 민망하다.  

김학선: [황망한 사내]의 노래들을 부르는 게 힘들다고 했었다. 

정차식: 초창기에 좀 그랬다. 감정에 사로잡혀서 만든 노래들이 많다 보니까 노래할 때 그게 자꾸 생각이 나는 거다. 

김학선: 그게 감추고 싶은 내면까지도 다 솔직하게 담아내서 그런 것인가? 

정차식: 그렇다. 사람들이 잘 안 믿는데, 음반을 내고 머리말에 "나오는 대로 지껄이고, 불리어지는 대로 불렀다"라고 쓴 게 진짜 사실 그대로다. 가사를 일부러 쓰고 한 것도 없다. 그냥 코드 하나 쳐놓고 생각 좀 하다가 아무 멜로디나 부르는 거다. 가사도 만들어서 쓴 적이 없고 그냥 눈 감고 부르는 대로 가사가 됐다. 그래서 가사 체제가 선명한 노선이 없고, 그냥 곡이 주는 느낌하고 내 감정이 맞물려져서 나오는 대로 지껄인 거다. 물론 2절은 운율에 맞춰서 가야 하니까 그렇게 나온 가사에 조금씩 더한 부분은 있지만 대부분은 그냥 나오는 대로 다 했다. 멜로디도 후렴이나 이런 거 생각 안 하고 좋은 멜로디를 찾고 하는 것도 없었다. 입에서 나오는 대로 가사가 되고 멜로디가 됐다. 그러다 보니 그동안 얼마나 할 말이 많았으면 이러는 건가,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렇게 나온 가사가 어떻게 다 말이 되는 걸 보면서 내가 천재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었다.(웃음) 

김학선: 그렇게 하고 싶었던 말이 대부분 사랑과 관련한 말들이었나? 

정차식: 사람이 뭔가 생각에 잠기게 되고 술을 먹게 되면 과거에 대한 부분이 되게 크게 작용을 하지 않나. 물론 지금 나는 사귀는 여자가 있지만, 옛날 여자가 그렇게 생각이 많이 나더라. 안타까움도 많이 들고, 내가 그 사람들에게 용서를 빌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것 같고. 나는 이런 스타일이니까 네가 따르든지 아니면 가라, 늘 이런 막무가내의 삶을 살다 보니까 그 사람들에게 미안하다는 고백을 하고 싶었다. 실제로 메일도 보내보고 했는데 이미 시간이 지난 뒤에 고백을 해버리니까 그건 아무 것도 아닌 게 돼버리더라. 상처가 있었을 때 고백을 하고 미안하단 말을 했어야 했는데, 그런 후회들과 철이 드는 느낌들이 계속 들다 보니까 음반의 주제나 느낌 자체가 그런 식으로 가게 됐다. 

김학선: 숭고함까지 느껴진다는 평도 있었다. 

정차식: <마중>이나 이런 곡을 듣고 있으면 나 스스로도 숭고해지는 것 같다. 물론 순간 그랬던 거지 내가 숭고한 사람은 아니다.  

김학선: 하지만 그런 숭고함도 정차식 씨가 갖고 있는 한 부분 아닌가? 

정차식: 그러니까 내가 좋아했던 시인과 촌장 같은 음악들, <가시나무>가 갖고 있는 숭고하면서 목가적인 정서가 나에게도 있었던 거다. 잠시 돌아서 그게 어느 정도 나왔던 거지만 나는 숭고한 사람이 아니다.(웃음) 

김학선: [황망한 사내]에서 가장 좋아하는 노래가 <촛불>인데, 곡에 새 소리도 들리고 앰비언스가 계속 들어가 있다. 

정차식: 숲 소리다. 내가 지금 사는 집 바로 앞이 산인데 바람이 불면 "스스스스" 하는 숲 소리가 난다. 나 사는 아현동 앞에 사창가가 있는데 그 집들 가운데 '촛불'이란 집이 있다. 어느 날 술을 먹고 집에 가는데 택시가 신호에 걸려서 딱 '촛불' 앞에 섰다. 내 또래 되는 아줌마가 그 앞에 앉아있는데 그 모습이 되게 처량하게 느껴졌다. 분명히 저 사람도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을 것이고 뭔가 기대하는 바도 많았을 것인데 삶은 저렇게 지쳐가고…. 그 모습을 보고 집에 와서 들었던 생각들이 '촛불'의 가사로 나온 거다. 나의 사랑이고 싶은데 그것도 안 되는 부분이고. 그런 슬픈 노래를 단순히 슬픈 느낌의 뉘앙스로만 노래하고 싶지 않았다. 물론 슬픈 노래지만 숲속 한가운데서 느껴지는 그런 처연한 느낌의 노래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집 앞의 숲속에 가서 숲의 소리를 녹음한 거다. 

김학선: 내가 궁금한 건, 아까 곡과 노랫말이 바로 떠올랐던 것처럼 그런 앰비언스 효과 같은 것들도 곡을 만드는 것과 함께 즉흥적으로 바로 떠오르는가 하는 것이다.

정차식: 그렇다. 곡을 만들면서 바탕색을 칠하는 것처럼 함께 생각이 난다. 이 곡은 기타 소리랑 숲 소리가 함께 나오면 좋을 것 같다, 이런 식으로 곡을 처음 발상할 때부터 그렇게 된다. 그런 연상 작용으로 멜로디도 나오고 편곡까지 된다. 그런 건 머릿속에서 대부분 다 이루어진다. 나는 그걸 그냥 재생을 하는 거다. 

김학선: <촛불>도 그렇지만 발라드를 정말 잘 만드는 것 같다. [유감] 때부터도 그렇고. 

정차식: 그게 다 뽕끼가 있어서 그렇다.(웃음) 나이가 좀 있다 보니까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내가 어릴 때부터 헤비메탈 들으면서 살아왔던 사람도 아니고, 고등학교 들어가서야 동아기획 음반들을 처음 듣고 연장선상으로 록 음악을 듣기 시작한 사람이다. 어렸을 때부터 '조용필이 이기나, 이용이 이기나' 궁금해서 보던 사람이다 보니까 어쩔 수 없이 가지고 있는 부분이다. 그런데 록 음악을 할 때는 그걸 부정하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 '이런 걸 하는 건 정말 쪽팔리고 창피한 거다'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는데 내가 곡을 쓰면 은연중에 뽕끼가 나오는 거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정말 자연스러운 건데 그때는 그랬다. 지금은 '왜 한국사람인데 그걸 안 해야 하지? 그게 왜 쪽팔린 거지?'라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그건 나의 피를 숨기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학선: 레이니 선 때도 그랬고, '남자', '사내' 이런 것들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정차식: 내가 진짜 사내다우면 아마 쓰지 않을 거다. 바라는 이상향이 사내이기 때문에 자꾸 쓰는 거다. 사는 게 다 찌질하지 않은가. 그렇지만 정말 낭만적이고 멋진 사내가 되고 싶다는 욕망이 있다. 내가 생각하는 사내라는 건, 원시시대에 남자는 사냥을 하고 적들과 싸우고 하는 그런 이미지이다. 불굴의 의지를 보여주면서 진취적인 성향을 갖는, 여자를 때리고 폭력적이고 한 게 아니라 되게 진취적이고 자기를 불살라서 뭔가를 할 수 있는 게 사내적인 면. 그리고 사내가 가질 수 있는 낭만적인 것도 되게 좋아했다. 그렇게 늘 그런 진짜 사내가 되고 싶다는 동경이 있는 거다. 

김학선: 그게 부산에서 자란 정서적인 영향도 있는 것 아닌가? 

정차식: 맞다. 녹아들은 거다. 부산 뱃사내의 정서 같은 것. 영화에 많이 나오지 않나. 뜨거운 형제애와 불의를 보면 못 참고 내 몸을 다 불사르고 하는 것들. 난 그러질 못한다.(웃음) 불의를 보면 바로 숨어버리고 도망가고 하는데,(웃음) 그게 되게 무모할진 모르지만 되게 멋있지 않은가. 그렇게 죽더라도 한 번 멋있게 살다 가는 것. 동경하는 거다. 그런 '맨'적인 느낌을. 

김학선: [황망한 사내]를 내고 반 년도 안 돼서 [격동하는 현재사]를 냈다. 주위 음악인들 얘기를 들어보면 나이가 마흔쯤 되면 창작력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 정차식 씨는 오히려 더 왕성해진 것 같다. 

정차식: 나는 일반적인 뮤지션들보다 되게 근면성실한 편이다. 늘 일어나는 시간을 정해놓고 일어나고 작업 마치는 시간도 정해놓고, 일단 직업이란 생각을 많이 한다. 어릴 때 공돌이 생활을 장시간 했었다. 쇠도 깎고 이런 일도 많이 했었고, 아버님도 되게 성실하신 분이다. 그러다보니 물려받은 것도 있는 것 같다. 사람이 먹고살려면 성실하지 않고서는 아무 것도 얻어지는 게 없다는 생각을 나이 들면서 하게 됐다. 그리고 [황망한 사내]를 내고 다른 드라마 음악 작업을 하기로 했었는데 그게 미뤄지게 됐다. 할 게 없어졌는데 여기서 그냥 놀아버리면 내가 이 나이에 원하는 걸 하나도 얻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하게 [황망한 사내] 내고 평론가들이 좀 관심을 가져줬지만 그밖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섭외도 안 들어오고, 진짜 황망했다.(웃음) 8월에 음반을 냈는데 첫 인터뷰를 12월에 했으니까. 그러면서 객기가 좀 생겼다. 그럼 내가 나를 홍보하기 위해서 한 장의 음반을 더 내겠다, 생각을 한 거다. 내가 살아있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건 음반을 발표하는 것밖에 없었다. 당시엔 나 혼자였기 때문에 공연을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고. 그 짧은 시간에 한 장의 정규 앨범을 더 내면 사람들이 나에게 미쳤다고 할 건데, 스스로도 괴물이 되고 싶었다. 진짜 음악에 미친 놈, 괴물이라는 얘기를 듣고 싶었다. 어차피 이걸로 내가 큰 그릇이 되지 못한다면 나쁘게라도 또라이라는 소리를 들어봐야겠다, 라는 생각을 한 거다. 되게 힘들었다. [황망한 사내] 내고 한 달인가 쉰 다음에 바로 작업에 들어갔기 때문에 많이 지쳐있었다. 나중에는 집에서 믹싱하고 하는데 귀에서 계속 삐- 소리가 나고 그래가지고 되게 힘들었다. 사람이 너무 신경질적으로 변하게 되고 되게 피곤한 일이더라. 그래도 무조건적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안 그러면 나란 존재가 또 묻혀버리고 아무 것도 아닌 존재가 될 것 같았다. 그게 싫었다. 내 이름이 레이니 선의 멤버로 끝나버리는 게 싫어서 미친 척 하고 한 장 더 낸 거다. 

김학선: 그럼 영감이 안 떠올라도 계속 앉아서 작업을 하는 편인가? 

정차식: 난 그런 편이다. 영감이란 게 참 고고한 잣대인 것 같다. 영감이 안 떠오른다고 안 하면 평생 안 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나는 아무 생각이 없어도 피아노를 친다든지 기타로 코드 하나 깔아놓고 그냥 이런 생각, 저런 생각 하다가 만드는 거다.  

김학선: [격동하는 현재사] 같은 경우는 계속해서 장난 식으로 만들었다고 말은 하지만, 마냥 장난만은 아니었을 것 아닌가. 

정차식: 그렇다. 마냥 장난은 아니다. 그 중에서 심각했던 것도 있고, 그래서 내가 들으면서 가슴이 아팠던 것도 있는데, 일단 시도란 측면에서는 장난스러웠다. 장난스럽다기보다는 별 의미를 안 둔 거다. 근데 내가 의미를 두기 시작하면 그게 또 큰 문제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건 이렇게 해야 하고, 저건 오케스트라를 써야 하고, 이렇게 되면 또 무지하게 커져버리니까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만들고 싶은 대로 만들었다. 이 음악이 어디로 갈지 모르겠는데, 계속 산으로 가면 그냥 그대로 놔두는 거다.(웃음) 어차피 음악이란 건 발상으로 계속 가는 거기 때문에 산으로 간 게 많았다. 그래서 2집에 보면 갑자기 쌩뚱맞게 이상한 것 나오고 하는데 나는 그게 멋지다고 생각해서 만들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보면 '이게 뭐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거다. 나와 사람들이 생각하는 범위가 다를 수도 있는 거고. 

김학선: 지금 결과로 보면 사람들도 정차식 씨의 그런 의도를 받아들여준 것 아닌가? 

정차식: 좋게 생각해주는 것 같다. 내가 너무 사랑받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다.(웃음) 

김학선: [황망한 사내]와 [격동하는 현재사], 두 장의 앨범 모두를 관통하는 정서가 '욕망'이라고 생각한다. 

정차식: 그렇다. 욕망이란 건 매분, 매초마다 생겨나는 것 아닌가. 지금 옆 테이블에 앉아있는 여자를 봐도 욕망이란 걸 느낄 수가 있다. 아주 원초적인 욕망들 있지 않나. 물욕도 있고 성욕도 있고 식욕도 있고. 매번 욕망 속에서 사는 거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면 나쁜 거라면서 그걸 부정하면서 살려고 하지 않나. 내가 사람답고 나다운 게 뭔가를 찾았을 때 허무함도 있고 황망함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모든 게 거세된 것처럼 산 것도 아니었다. 늘상 욕망에 사로잡혀서 살았다. 작업하기 전에 AV 사이트에 가서 신작 나온 거 찾아보기도 하고.(웃음) 밤에는 술 한 잔 하면서 목가적인 분위기를 만들고 그러다가 아침에 일어나서는 '뭐 새로 나온 거 없나?' 이러고 사는 게 사람이더라.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살면서 그렇게 보이지 않으려고 하지 않나. 내가 1집에서 목가적으로 "진리야~" 이러다가 2집에서 "아름답소~"라고 하면서 첫 곡들을 그렇게 배치한 이유가 똑같은 인간이라는 걸 말하고 싶었던 거다. 욕망을 말하는 사람과 뭔가를 깨우친 척 하는 사람과 다를 게 아무 것도 없다는 생각을 했다. 욕망이 무엇이냐 하면 그게 삶인 거고, 삶이 곧 욕망인 거다.  

김학선: 그럼 앞으로도 욕망이란 건 정차식 씨 음악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건가? 

정차식: 일단 만드는 것에 욕망을 갖고 있다. 음악 하는 사람을 예술가로 표현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예술은 늘 도전 속에서 나오는 거라고 생각한다. 자기가 잘 쓰는 코드, 자기가 잘 쓰는 분위기로만 계속 작품을 만든다면 공장에서 음악을 찍어내는 것과 다를 게 없지 않나. 늘 새로운 시도를 하고 '지금 더 좋은 게 뭘까'를 계속해서 찾는 게 예술인 건데, 지금 그런 예술을 반듯하게 잘 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거의 음악공장의 수준으로 늘 잘 먹히는 것만을 하려고 하는데 난 그런 식으로 음악 하고 싶지는 않다. 늘 도전하고, 이게 나랑 잘 어울릴 것 같으며 한 번 파보고, 그러면서 재미를 찾아야지 장시간 오래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김학선: 난 [격동하는 현재사]를 가리켜 근본을 찾을 수 없는 작품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혹시 참조목록(레퍼런스)이라고 할 만한 게 있나? 

정차식: 그런 건 전혀 없었다. 음악적으로 레퍼런스는 전혀 없었고, 작업하면서 욕망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보이스나 그런 건 뭘까, 하는 생각 정도를 했었다. 일단은 걸쭉함. 하지만 그냥 걸쭉한 걸로는 욕망을 제대로 표현할 수 없을 것 같았고, 우리나라에는 스크리밍 제이 호킨스(Screamin' Jay Hawkins) 같은 사람이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나도 그렇게 되고 싶었다. 전에 유튜브에서 스크리밍 제이 호킨스의 영상을 하나 본 적이 있는데 완전 또라이 같았다. 무슨 부두교 의식 하는 것처럼 해골에 담배 끼어놓고 이상한 소리를 내는데 진짜 또라이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나도 그렇게 미친놈 소리를 듣고 싶었다. 음악적으로 닮고 싶은 게 아니고 그런 정서를 갖고 싶었다. 사람들에게 그런 느낌을 보여주고 싶었다.  

김학선: 의도하진 않았겠지만 어쩔 수 없이 톰 웨이츠(Tom Waits)와 비교하는 얘기가 종종 나온다. 

정차식: 나는 톰 웨이츠를 자세하게 들어본 게 한 곡밖에 없다. 이번에 음반 내고 하도 톰 웨이츠 얘기를 많이 해서 들어봤는데 약간 뉘앙스가 비슷한 부분이 있긴 한데 느낌은 많이 달랐다.  

김학선: 한편으로는 백현진 씨와도 비교가 많이 됐다. 

정차식: 1집과 많이 비교를 하더라. 지금 홍대 1세대 중에서 이렇게 나이를 먹고 남자 솔로로 무게가 있는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하도 없다 보니까 비교를 하는 것 같다. 내가 보기에는 별로 비슷한 부분이 없는 것 같다. 

김학선: 또 새로운 앨범을 준비 중이라는 얘기도 들리던데. 

정차식: 원래는 별로 할 일이 없으면 준비를 하려고 했는데 하던 일들이 잘 돼서 그러는지 드라마 음악도 해야 하고 영화 음악도 해야 하고 계속 일들이 들어오고 있다. 그래서 좀 있다 내려고 한다. 욕심이 생기면 내년 이매진 어워드 하기 전에 또 내서 갈 수도 있는 거지만,(웃음) 아직까지는 작업에 들어가지 않았고 생각만 계속 하고 있다. 

김학선: 레이니 선은 지금 어떤 상태인 건가? 

정차식: 쉬고 있는 중이다. 다들 바쁘다. [Origin] 앨범도 서로 바쁜데 파일 공유해가면서 작업했던 거다. 그러다 보니 음악이 좋다, 나쁘다를 떠나서 맥이 빠진 음반이었다. 응집력도 없었고. 그렇게 쓸쓸하게 그런 음반을 내고 공연을 하는데 합주할 시간이 없는 거다. 공연하는 날 1시간 일찍 만나서 잠깐 합주하고 그러다 보니까 아예 하기가 싫더라. 과연 우리가 꿈꿨던 게 이런 건가 하는 생각도 들고. 얼마 전에 'TOP밴드' 나가자는 얘기도 나왔는데,(웃음) 그게 그렇게 싫었다. 지금 거기 나가서 조금 더 생명을 연장한들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 서로 바쁘고 그런데 억지로 짜내면 안 될 것 같고, 진짜로 레이니 선이 하고 싶을 때 욕심 내지 않고 하면 괜찮은 게 나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어떻게 보면 키를 내가 쥐고 있는 건데 지금은 안 하고 있다. 

김학선: 전통적인 록 세션에 흥미가 떨어진 면도 있나? 

정차식: 좀 그렇다. 록은 되게 스트레이트하고 단순하지 않나. 물론 비트는 화려할 수도 있고, 톤으로 승부할 수도 있는 거긴 하지만 디테일한 면에서는 아무래도 부족하다. 탱고나 이런 음악을 들어보면 록처럼 강렬하게 휘몰아치진 않지만 그만큼의 다른 파급 효과가 있다. 록이 모자라고 안 된다는 게 아니라, 지금은 다른 음악들의 그런 묘미에 빠져있기 때문에 예전처럼 록에 흥미를 못 느끼고 있다. 그리고 최근에 나오는 밴드들의 음악을 들어보면 파워도 별로 못 느끼겠고 우리가 어렸을 때 들었던 끓어오르는 느낌은 없는 것 같다. 그러다보니 옛날 음반들만 듣게 되고 요즘 록 음악은 뭐 이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김학선: 요즘 관심은 탱고나 월드 뮤직 쪽에 많이 가있나? 

정차식: 관심이 많다. 뉘앙스라든지 재미있는 부분들이 참 많다. 특히 남미나 스페니쉬 음악을 들어보면 우리 정서랑 잘 맞는 부분도 많은 것 같고. 리듬 같은 것들도 내가 전혀 잘 몰랐던 부분이 많아서 자극이 많이 된다. 지금은 록 음악보다는 그런 것들에서 자극 받는 것들이 더 많다. 자극받는 부분으로 기우는 건 당연한 거다.  

김학선: 듣다 보면 그런 음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당연한 거고. 

정차식: 그런 욕망이 생긴다. 내가 음악적으로는 잘 못하는 사람인데, 어떤 음악을 듣고 내 것으로 흡수하는 건 잘하는 편이다. 어떤 좋은 걸 듣고 내 것으로 만드는 데는 약간의 능력이 있다. 크리에이티브라기보다는 접목시키고 하는 것에 센스가 있는 것 같아서 재미를 많이 느끼고 있다. 그래서 당분간 솔로로 계속 앨범을 낸다면 그게 록 음악은 아닐 거다. 대신에 지금까지 내 음반에는 걸쭉한 보컬이 담겼는데 다음에는 극한의 보컬을 전달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인간적인 면이 보이고 하는 지금의 보이스도 좋지만, 내가 처음 음악을 시작하게 된 건 남이 따라하지 못하는, 전혀 흉내 낼 수 없는 보컬리스트들에게 흥미를 느끼면서부터였기 때문에 내가 잘할 수 있는 그런 부분들에 대한 생각도 하고 있다. 

김학선: '귀곡성'의 극한 같은 것인가?(웃음) 

정차식: 맞다. 그런 것도 한 번씩은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악과의 접목도 그렇고, 해보면 멋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김학선: 계속 홍보 음악이나 드라마 음악 얘기를 했는데, 이게 단순히 생계를 위한 건가? 아니면 본인과 잘 맞기도 하는 건가? 

정차식: 예전에는 일부러 맞췄다. 내가 그런 거에 잘 맞는 사람이겠거니 하고. 왜냐면, 하고 싶었으니까. 그쪽이 돈이 되기 때문에 영화 음악도 하고 싶었다. 레이니 선 시절부터 내가 만든 음악을 두고 영상이 떠오른다는 얘기도 많았고 해서 내가 그런 작업에 잘 맞는 사람이라고 맞춰왔다. 그런데 내가 착각했던 것 같고, 내 음반을 만들다가 다시 드라마 음악을 만들려니까 괴리감이 느껴졌다.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음악을 만들어야하는 것 아닌가. 솔직하게 배킹(backing) 음악은 스타일만 있으면 되는 거다. 음악 안에 화려한 멜로디도 필요 없고 그냥 깔리면 된다. 그러다 보니까 최근에는 내가 (드라마) 음악을 써도 많이 쓰이지가 않았다. 내가 곡을 쓰면 무언가를 계속 심어주려고 한다. 강한 멜로디든 뭐든 간에. 

김학선: 그런 걸 그쪽에서는 원하지 않겠다. 

정차식: 그렇다. 그런 게 들어가면 안 된다. 뭔가 정확하게 들려버리면 안 된다. 대사를 하고 그래야 하기 때문에. 그런데 나는 계속 그렇게 만들고 있더라. 음반을 연속해서 두 장을 만들다 보니까 습관이 돼버린 거다. 그래서 최근에는 나랑 잘 안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웃음) 그래서 음악이 어려운 거다. 

김학선: 전에 레이니 선이 [Origin] 내고 인터뷰했을 때와 비교하면 훨씬 밝아진 것 같다. 

정차식: 사람이 달라진다. 레이니 선을 할 때는 알게 모르게 사람이 되게 짓눌린다. 내가 이렇게 보여야 한다는 압박이 있다. 장시간을 그렇게 이미지를 만들어 살아왔고, 어릴 때부터 그런 이미지를 만들어왔기 때문에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라는 착각을 하게 됐다. 그걸 놓기 시작하니까 참 편하고 재미있는데 왜 어릴 때는 그렇게 행동을 했을까 하는 후회를 많이 한다. 그때는 주변에서도 말을 잘 안 걸었다. 신기한 게, [Origin] 때도 그런 것에서 많이 벗어나 있는 상태였는데 레이니 선만 하면 다시 그렇게 된다.(웃음) 레이니 선만 하면 이상해진다. 

김학선: 그래도 레이니 선에 애착이 있다고 느낀 게, 전에 "레이니 선을 잘 끝내야 하는 책임감 같은 게 있다"는 말을 했었다. 그 말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정차식: 내가 'TOP밴드'를 안 나갔던 이유도 잘 끝내고 싶어서였다. 공연을 하게 될지 안 하게 될지, 아니면 우리가 늙어서 못하게 될지 모르지만, 멋지게 음반을 한 장 더 내고 끝내고 싶다. 우리가 처음 나왔을 때처럼 쇼킹하고 크리에이티브한, 그런 걸 한 번 더 제시하고 끝내야 하는 게 우리의 역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그게 잘 끝내는 거지, 방송에 나가서 이름값 좀 더 올리고 옛날 곡들 계속 카피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 

김학선: 이번에 제주에서 정차식 씨 공연을 처음 본 투어 참여자 가운데 한 명이 "구원 받은 것 같다"는 얘길 했다고 하더라.(웃음) 

정차식: 난 그런 반응들이 왜 일어나는지 이해를 잘 못하겠다.(웃음) 공연을 할 때마다 좋은 말들을 많이 해준다. 연극적이다, 장악하는 능력이 탁월한 것 같다는 얘기를 많이 해주는데 나는 그냥 내가 즐기면서 하는 거다. 레이니 선 때는 멋져 보이고 위대해 보이려고 공연을 했었는데, 지금은 내가 즐기려고 하는 거다. 내가 놀려고, 혹은 내가 스스로 빠져들어서 슬픈 노래를 슬프게 부르려고 하는 거다. 그래서 레이니 선 때는 나오자마자 가오 딱 잡고 다리를 벌리고 서있고 그랬는데 이제는 그냥 무대를 왔다 갔다 하면서 노래한다. 노래를 만들 때 그렇게 만들기 때문에 무대에서도 편하게 그런 정서를 느끼려고 그렇게 한다.  

김학선: '올해의 앨범' 상도 받고 공연에 대한 호평도 쏟아졌는데, 이런 반응들이 부담으로 다가오나? 

정차식: 그렇다. 이번에 상까지 받고 해서 다음 음반을 어떻게 내야 할지 부담돼서 죽겠다.(웃음) 그냥 내 꼴리는 대로 만든 건데, 내 꼴리는 게 상까지 받고 그러니까 좀 위험하다는 생각을 했다. 나의 자유를 뺐어갔다는 생각도 들었고. 막 할 수 있는 부분인데, 이제는 좀 부자연스러워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어서 약간은 좀 위험한 걸 받았다는 생각도 든다.(웃음) 노미니 정도만 됐으면 그거에 만족하고 그냥 내 하고 싶을 대로 계속 했을 텐데 상까지 받고 보니까 어떻게 해야 할지 부담이 된다.  

김학선: 이번에 상을 받아서 내년 사우스 바이 사우스 웨스트(SXSW)에 참가하게 됐는데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나? 

정차식: 사실은 이걸 미래지향적으로 뭔가 될 만한 팀에게 양보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했었다. 내가 밴드도 아니고 세션을 꾸려가지고, 굳이 내가 이 나이에 외국에 가서 한 번 즐기는 걸로 끝나기엔 내가 취지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여러 생각이 많았다. 양보를 하는 건 좋은데 레드 불에서 주는 돈은 내가 받을 수 없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웃음) 한편으론 가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 지금 나오는 어정쩡한 음악들보다는 내가 가서 우리나라 장단 같은 음악을 보여주는 것도 신선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또 갤럭시 익스프레스(Galaxy Express) 같은 애들이 보여주는 파이팅을 내가 보여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지금도 고민하고 있는 부분이다.  

김학선: 여전히 시인과 촌장의 [숲] 같은 앨범을 만드는 게 목표인가? 

정차식: 얼마 전에 EBS에서 만든 다큐멘터리 '음악은 우리를 어떻게 사로잡는가'를 보면서 많이 공감했던 게, 늘 스스로에게 만족을 못하는 것 같다. 내가 [숲]을 들으면서 좋았던 게 뭐냐면, 아무런 감정의 준비가 안 되어있는 사람도 그 노래들을 들으면 뭔가 감정이 생기고 마음이 짠해지게 만들 수 있다는 거였다. 그런 걸 만들 수만 있다면 내가 당장 음악을 그만 둬도 얼마나 행복할까, 하는 생각을 한다. 듣는 것만으로 생각하게 하고 깊게 느끼게 하는 음악을 만든다면 지금 당장 음악을 하지 않는다고 해도 얼마나 행복한 삶이 될 수 있을까. 하지만 본인은 그게 최고가 아니라고 생각을 할 거다. 그러니까 계속 음악을 하는 거고. 누가 나의 음반에 이건 시인과 촌장의 [숲]보다 더 뛰어난 음반이라고 격찬을 한다 하더라도 나에게는 아닐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만날 모자라다는 생각을 하면서 늘 뭔가를 만들어야 하는 슬픈 운명을 가지고 사는 거다. (2012/다음 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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