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춘 - 아치의 노래
때때론 양아치라고 불리우기도 하는 그는
하루 종일을 동그란 플라스틱 막대기 위에 앉아
비록 낮은 방바닥 한 구석 좁다란 나의 새장 안에서
울창한 산림과 장엄한 폭포수, 푸르른 창공을 꿈꾼다
나는 그가 깊이 잠드는 것을 결코 본 적이 없다 (가끔)
한쪽 다리씩 길게 기지개를 켜거나 깜박 잠을 자는 것 말고는
그는 늘 그 안 막대기 정 가운데 앉아서 노래를 부르고
또 가끔 깃털을 고르고 부리를 다듬고 또 물과 모이를 먹는다
잉꼬는 거기 창살에 끼워 놓은 밀감 조각처럼 지루하고
나는 그에게 이것이 가장 안전한 네 현실이라고 우기고 (나야말로)
위험한 너의 충동으로부터 가장 선한 보호자라고 타이르며
그의 똥을 치우고 물을 갈고 또 배합 사료를 준다
아치의 노래는 그의 자유, 태양빛 영혼 (그러나)
아치의 노래는 새장 주위로만 그저 뱅뱅 돌고…
그와 함께 온 그의 친구는 바로 죽고 그는 오래 혼자다
어떤 날 아침엔 그의 털이 장판 바닥에 수북하다 (나는)
날지 마 날지 마 그건 자학일 뿐이야라고 말한다
너의 이념은 그저 너를 깊이 상처낼 뿐이야라고 말한다
그는 그가 정말 날고픈 하늘을 전혀 본 적 없지만 (가끔 화장실의)
폭포수 소리 어쩌다 창밖 오스트레일리아 초원 굵은 빗소리에
환희의 노래처럼 또는 신음처럼 그 새장 꼭대기에 매달려
이건 헛된 꿈도 이념도 아니다라고 내게 말한다 (그러나)
아치의 노래는 새장 주위로만 그저 뱅뱅 돌고…
내일 아침도 그는 나와 함께 조간신문을 보게 될 것이다
내가 아침마다 이렇게 가라앉는 이유를 그도 잘 알 것이다
우린 서로 살가운 아침인사도 없이 그렇게 하루를 시작하고 (가족 누군가)
새장 옆에서 제발 담배 좀 피우지 말라고 내게 말할 것이다
아치의 노래는 그의 자유, 태양빛 영혼 (그러나)
아치의 노래는 새장 주위로만 그저 뱅뱅 돌고…
정태춘(과 박은옥) 선생이 2003년 이후 전혀 음악활동을 하지 않는 데는 특별한 사회적 이유가 있다. 간략하게 말해서 한국사회의 급격한 신자유주의화와 그에 따른 대중들의 의식변화에 대한 절망감 때문이다. 노문모(노무현 지지 문화예술인 조직)에도 초기에 참여했다가 노무현이라는 후보에 대한 지지를 넘어 사회진보를 담지하는 전망이 필요하다는 소수의견을 수차례 내고 그게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자 탈퇴한 것이 그 첫 번째 행보였다. 나는 사회현실과 관련한 선생의 그런 치열한 고뇌와 행보가 매우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고 본다. 알다시피 한국의 주요한 진보적 문화예술인들은 김대중, 노무현 정권 동안 신자유주의 개혁에 선을 긋지 못하고 정치적 민주주의만 강조하는 모습을 보였다. 고진 식으로 말하면 그는 음악을 중단함으로써 음악가로서 자신을 지켜왔다고 할까. 내가 아쉬운 것은 그의 선택과 행보가 사회적으로 각별한 의미를 가짐에도 그가 자신의 그런 선택과 행보에 대해 사회적으로 일절 침묵함으로써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내가 정태춘 인터뷰를 진행하는 이유다. 인터뷰는 정태춘이라는 개인의 이야기인 동시에 우리의 지난 10년에 관한 이야기인 것이다. 나는 그의 선택과 행보가 제대로 이해되고, 그가 다시 활동에 복귀하길 소망한다. 나는 그가 사회성원들에게 준 위로의 양을 고려할 때, 한국 사회는 그의 복귀를 요청하고 도울 책임이 있다고 믿는다. - 김규항(2009. 10)
정태춘 선생의 새 앨범이 나올 예정이라고 한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다만 걱정되는 것은, 이른바 민주개혁 진영에서 선생에게 '저항의 순교자' 이미지를 부여하며 그걸 '反MB' 운동(?)으로 끌어가려고 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선생이 노무현 정부에서 어떻게 싸워왔는지, 그리고 왜 음악을 그만 뒀는지를 안다면, 그건 정말 염치없는 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