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
1. 대전에 내려간 첫 날, 친구들을 만나서 유성에 있는 일식집에 갔다. 원래는 고향손짜장엘 가서 삼선짬뽕을 먹을 생각이었는데, 친구가 눈 먼 돈이 생겼다고 비싼 곳으로 가자고 해서 가게 됐다. 방에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자 당황스럽게도 언니들이 들어와 옆에 하나둘 앉았다. 일식집에도 그렇게 접대하는 언니들이 있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고, 그 언니들은 음식을 접시에 덜어주고 하는 진짜(?) 접대만을 했지만 2차를 나가는 일식집도 있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됐다. 당황스럽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해서 "계속 여기 계시는 거냐?"고 물어보니 오히려 그쪽에서 더 당황스러워 해서 같이 당황스러워했다.-_- 언니들에게 자연스럽게 반말을 하는 친구의 모습도 낯설어보였다. 원래 일식을 별로 안 좋아하기도 하고, 그런 분위기도 너무 싫고 해서 나중에 거길 데려간 친구에게 살짝 짜증을 내긴 했는데, 친구의 의도가 뭐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런 곳이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던 건지, 아니면 그냥 맛있는 회를 먹이고 싶었던 건지. 중간에는 주방장이 들어와 인사를 하고, 또 친구는 능숙하게 술잔을 만 원짜리 지폐에 싸서 술을 따라주며 팁을 주던데, 그런 문화 자체가 나에겐 너무나 생경하고 불편했다. 불편하면 안 가면 된다. 앞으로 그런 곳이든 업소든 내가 갈 일은 전혀 없을 것이다. 고향손짜장은 기어이 토요일에 갔다.
2. 설 동안 읽은 책들 가운데 가장 좋았던 책은 전혀 예정에 없던 정유정의 소설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였다. 큰누나네 집 책장에 '청소년 문학'이라 불리는 소설들이 꽂혀있지 않았다면, 그리고 누나가 추천해주지 않았다면 아마 평생 내가 이 소설을 읽을 일은 없었을 것이다. [완득이]의 대박 이후 불기 시작한 청소년 문학 열풍이 왠지 얄팍해 보여 그쪽 관련 책들은 굳이 일부러 찾아 읽질 않았었는데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는 그런 나의 선입견을 미안하게 만들었다. 다소 억지스런 설정도 있지만, 단숨에 읽어 내려갈 만큼 이야기 구조도 탄탄하고 무엇보다 읽고 나서 남는 길고 깊은 여운이 좋았다. 내가 사랑하는 소설인 [나의 아름다운 정원]만큼 좋았다. 좋은 성장소설이다.
3. 미드 [와이어(the wire)] 다 봤다. 짱! [와이어]를 보기 전까지 나에게 볼티모어는 'MLB의 삼미 슈퍼스타즈'였던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연고도시일 뿐이었지만, [와이어]를 보고 나서 흑인 비율이 높고, 따라서(?) 강력 범죄가 많은 도시라는 걸 알게 됐다. [와이어]에 나오는 흑형들의 말투나 행동거지가 예전에 박준규가 보여준 모습과 너무 흡사해 혼자서 낄낄대곤 했다. [와이어]와는 상관없이 얼마 전부터 사람들을 만나면 주먹을 부딪치는 (흑인식) 인사를 하곤 하는데, 오늘은 대전 집을 떠나면서 엄마와 주먹 인사를 했다. 깔깔.
4. 그리고 오리올스 이번 시즌, 게선생도 영입하고 해서 완전 다이너마이트 타선이다. [와이어]로 맺은 인연, 오리올스나 응원해야겠다. 내셔널 리그는 신시내티 레즈로.
5. 얼마 전에 [무한도전] '정총무가 쏜다' 편에 나왔던 공덕동 튀김집이 대박 났다고 하던데, 거기, 간단히 말해서 '맛.없.다'.
6. 설 특집으로 '심형래 쇼'를 해줬다고 하던데, 그것보다 원년 멤버로 꾸린 '봉숭아학당'을 다시 보고 싶다. 맹구와 오서방이 함께라면 두려울 게 없다. 언년이 이희구도 좋았고, 방청석을 향해 "열중쉬어, 차렷, 정신차렷!"을 외치던 반장 배동성도 괜히 웃겼다. 당시에 [쇼! 비디오자키]니 [유머1번지]니 하는 공개 프로그램의 방청석은 언제나 구미타자학원 언니들 차지였지. 그때 그 언니들은 지금 뭘 하고 있을까.
7. 내가 보는 엠팍은 다분히 보수적인 마초 사이트인데도 야갤이나 이런 곳에선 좌빨 사이트라며 '홍(어)팍'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렇게 우리 보수·애국(!) 진영에서 엠팍을 계속 거론하고 물고 늘어지는 건 그만큼 엠팍이 '가장 보통의' 한국 남성들의 생각이나 의견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엠팍엔 정말 별별 글들이 다 올라오는데, 엠팍만 다녀도 한국에서 일어나는 웬만한 사건·사고, 정계 소식, 문화·연예계 뉴스, 이슈, 각종 운동 경기 결과, 유행어 등등을 다 알 수 있다. [슬램덩크] 등장인물들을 가지고 싸움 순위을 정하면서 진지하게 논쟁을 벌이는 곳이 엠팍이다. 당시 강백호와 (유도부 주장인) 유창수가 짱의 자리를 놓고 다퉜고, 그 뒤의 순위를 놓고는 의견이 분분했다. 난 양호열이 다크호스라고 생각한다.
8. 퀸의 판권이 EMI에서 유니버설 뮤직으로 넘어갔다. 이를 기념해 유니버설에서 퀸의 그 유명한 베스트 앨범을 리마스터링하여 재발매했다. 빨간색 옆면에 'EMI/계몽사' 정도는 찍혀 있어줘야 진짜 퀸 같아 보이는데 유니버설의 퀸이라니, 괜히 짝퉁처럼 보인다.-_- 생각난 김에 퀸의 음반들을 꺼내서 차례로 듣고 있다. 내가 퀸을 그렇게까진 좋아하지 않은 것 같은데, [made in heaven] 이전의 앨범들은 거의 전부를 갖고 있구나.
9. 개추워. 문 좀 열어달라고, ㅆ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