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
1. 활동-한다고 하기도 이젠 민망하지만-하고 있는 음악동호회에서 아지트를 하나 마련했다. 음감회를 겸해서 회원들이 왔다갔다하면서 놀 수 있는 원룸 같은 곳인데, 이름은 '선셋 컬렉티브 호텔'이란다(뭐, 어디서 이름을 따왔는지는 대충 짐작할 수 있을 듯). 오늘 회원들에게 처음 공개하면서 음감회도 한다고 하는데 난 오늘도 못갈 듯. 오전까지만 해도 가려고 했는데 점심 먹고 나니 급피로가 몰려오면서 방전이 돼 아무래도 그냥 집에서 재충전해야할 것 같다. 난 안 돼.-_- (그러고 보니 오늘 k-1도 하잖아?)
2. 가방을 바꾸려고 한다. 지금 쓰는 가방은 2005년에 샀으니까 꽤 오래 쓴 셈이다. 뒤쪽은 완전 낡아서 헤져있는 상태다. 2005년에 별 생각 없이 인터넷으로 주문했었는데 상표명이 '아메리칸 이글'이었다. 미쿡에서 좀 살다온 도련님이 내 가방을 보더니 "야, 아메리칸 이글이네?" 하기에 미국에서 유명한 거냐고 물어보니까 "한국으로 치면 이랜드 정도?"
3. 견미리가 주식 대박을 맞았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문득 전 남편이었던 임영규가 생각났다. '3840 유격대'에 출연할 때까지만 해도 카리스마 있는 성격파 배우로 인식됐었는데 이혼 후에는 티브이에서 모습을 감췄다. 이후에 내가 그의 소식을 들었던 건 신문 사회면 가십란에서였다. 무전취식하다가 체포됐는데 주민등록마저 말소된 상태였다는 것. 견미리 뉴스를 보고 지금은 뭐하나 궁금해서 오랜만에 검색을 더 해보니 이 형 아주 막장 됐구나.-_-
4. 조선일보에 김선우가 글을 쓴다는 걸 최근에 알았다. 불과 얼마 전까지 한겨레에서 사람다움과 사랑에 대해서 논하던 그가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게 조선일보에 글을 쓰는 걸 보면서 참 역겹고 가증스럽다는 생각을 했다.
5. 재범이 사태 터지고 나서 한 일주일간은 투피엠 팬들이 하도 메일을 보내서 아주 노이로제가 걸릴 뻔 했다. 반협박성 제목부터 "한 번만 읽어달라"는 애원조의 제목까지, 제목은 천차만별이었는데 내용은 대동소이했다. 함께 보내는 파일도 다 똑같고. 이럴 거면 그냥 운영진이 대표해서 보내는 게 낫지 않나? 팬들 메일 신공에 기자들이 안티로 돌아설 판. 얼마 전엔 방송담당 기자한테 강인 팬들이 똑같은 짓을 했다고 한다.
6. 인터넷에 지-드래곤을 지익점이라고 하면서 은근히 까대던데, 생각해보면 21세기의 진정한 문익점은 김본좌가 아니었나 싶다. 날마다 하루에 20~30여편의 동영상을 업로드하고 커버 사진까지 올리는 정성. 초창기에는 대충의 줄거리까지 번역기로 돌려서 올려주는 정성을 보여주곤 했었다. 헤비 업로더의 세계에선 김본좌가 얍실한 짓을 많이 해 평판이 안 좋다고 하던데, 나 같은 일개 다운로더의 입장에서 김본좌만한 은인은 없었다. 그가 달려간 후엔, 어째 야동의 세계도 시들해졌다.
7. 오랜만에 후렌치파이를 사먹었는데, 아놔- 이제 봉지 하나에 후렌치파이가 하나밖에 들어있질 않네? 정 없게?
8. 최근에 한 지인이 최영 얘기하면서 "이성계한테 발린 사람"이라는 표현을 했는데, 이 말 왜 이렇게 웃기지?
9. 최근 가장 구하고 싶은 앨범은 블랙 사바스의 [headless cross]와 [tyr] 앨범. 어렸을 땐 별 생각 없이 들었는데 최근 다시 들으면서 참 훌륭한 앨범들이었다는 생각을 했다. 토니 아이오미와 코지 파웰이 만들어낸 묵직한 사운드에 비운의 보컬리스트 토니 마틴의 목소리가 더해지면서 오지 오스본 시절이나 로니 제임스 디오 시절에 뒤지지 않는 중후한 블랙 사바스를 만들어냈다. 토니 마틴은 정말 과소평가된 사나이. 예전에 emi에서 발매됐을 때 테이프로 샀었는데 이제 시디는 중고로 구하려 해도 씨가 마른 것 같다.
10. 요즘 개콘에 이상구 왜 안 나오지? "한 방에 훅 간다." 이것도 상구가 제일 먼저 한 건데. '상구 없다'에서 바보 상구로 나왔을 때 "마!" 이거 많이 따라했었다.-_-
11. 아마 누군가는 내가 지금 그만 두어야 한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분명히 나는 옥타곤에서의 심리적 장벽을 물리치지 못했다. 나는 20년간 스파르타식으로 훈련해 왔다. 그러나 이제 나의 몸은 낡아 버렸다. 세월이 나를 붙잡아 버렸다. 산토스는 경기에서 이겼다. 그는 젊고 더 굶주려 있었으며 더 공격적이었다. 그는 나보다 더 승리를 원했다. 매트는 유리처럼 미끌거렸다. 그래서 나의 왼발 하이킥은 실패하고 말았다. 하지만 변명거리를 찾는 건 아니다. 이건 관객들이 돈을 내고 볼 퍼포먼스가 아니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굶주려 있지 않다. 나는 안전하게 그것을 시작했었고 고통 받을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나는 지금까지 20년간을 군대식으로 살았다. 오전 6시에 일어나 오후 8시까지 훈련했다. 그러나 이제는 평범한 삶을 원한다. 케이지에 들어갈 때 내 고향인 프리블라카에서 낚시하는 것에 대해 생각했었다. 그런 식으로는 누구도 이길 수 없다. 아마 나는 무제한급 그랑프리 우승 후에 그만 뒀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크로캅이 이번에도 졌다. 조루캅, 로또캅, 먼산갑, 도망캅 등 숱한 (안 좋은)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지만, 그래도 나에겐 가장 멋진 격투가로 남을 것이다. 잘 가라 크로캅. 그동안 고마웠다.
12. 재박이 형은 안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