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
1. 요즘 윤상 앨범을 차례로 한 번씩 쭉 들었는데 역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앨범은 [part 2]이다. 음악적인 성취를 따진다면 [insensible]이나 [cliche]를 택하겠지만 개인적인 취향은 [part 2]에 머문다. 어렸을 때 편의점 알바하면서 들었던 <새벽>과 그 노래에 맞춰 희미하게 밝아오던 유성의 새벽 거리는 아직도 나의 맘속에 깊이 남아있다.
2. 뒷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105미터짜리 오봉산(봉이 다섯 개~). 처음 올라갈 때는 역시 페이스 조절에 실패해서 반도 못 가 깔딱댔는데, 이제는 제법 안정적이다. 오늘도 거의 힘들지 않았다. 오르내리면서 교향곡 한 곡씩을 듣고 있다. 요즘 아침에 좀 일찍 깨는 편인데, 아침엔 뒷산엘 오르고 밤엔 자전거를 타고 있다. 좋은 자기관리다. 내가 짱이다.
3. 등산 첫 날, 꼭대기에 오르고 너무 힘들어서 벤치에 누워있었는데 아디다스 모기한테 두 방을 물렸다. 팔뚝에 한 방, 허벅지에 한 방 물렸는데, 산모기가 지독한 줄 알고 있었지만 옷까지 뚫고 제크 크래커 크키만한 자국까지 남겼다. 하- 암튼 아디다스 모기 안 돼.
4. 복숭아는 물렁한 게 진리. 딱딱한 거 안 돼. 팩트임. 내가 앎.
5. 서태지 박스세트와 더더 4집을 팔기로 결정했다. 더더 4집을 미개봉으로 갖고 있었는데 이게 희귀음반이 된 줄은 모르고 있었다. 서태지 박스세트는 발매 당시에 팔았으면 30만 원 정도 받을 수 있었는데 이제 20만 원이나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어떻게 시간이 갈수록 가격이 떨어지냐.-_- 서태지와 더더를 팔고 돈을 조금 보태서 비틀즈 박스세트를 사고 싶은데 아, 어찌 될지.
6. 거리에서 찌라시 나눠주는 거 그냥 좀 받아주면 안 되나? 그게 뭐 어려운 일이라고 다들 쌩까고 지나가는 건지 모르겠다. 그냥 받아서 근처 쓰레기통에 버리면 그거 나눠주는 사람들은 일찍 일 끝내고 좋은 거 아닌가? 예비군 갔다가 30분 일찍 끝내주면 얼마나 좋은지 잘 아는 사람들이 너무 매정하다.
7. 아주 가끔 해설지를 써달라는 부탁을 받을 때가 있는데 지금까지 한 번도 응한 적이 없다. 이건 내 결벽증과 무관하지 않은데, 해설지는 일단 '핥아주는' 글이라는 게 전제가 되기 때문이다. 내가 처음 글을 쓰면서 세운 나름의 원칙은 핥아주는 글 쓰지 않겠다는 것과 뮤지션과 친하게 지내지 않겠다는 것, 두 가지였다. 가려서 쓰면 되지 않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이 바닥은 한 번 그쪽에 발을 들인 이상 가려 쓰기가 어려워진다. 담당자와 어느 정도 친분이 쌓인 마당에 "난 그건 구려서 못 쓰겠어요"라고 얘기하기도 어렵고, 또 먼저 음악을 못 들어본 상태에서 청탁에 응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렇게 해서 막상 음악이 구릴 때 과연 그 필자는 해설지에 구리다고 쓸 수 있을까? 아마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그냥 두루뭉술하게 바이오그래피 적당히 나열하면서 미지근하게 쉴드 치는 정도일 것이다. 예전에 록/메탈 음반 해설지를 거의 도맡아 쓰던 지인이 하나 있다. 회사에서 월급이 안 나와서-_- 해설지를 써서 생계를 이어갔다. 많이 쓸 때는 한 달에 23개까지 써봤다고 한다. 근데 지금 와서 하는 얘기는 자기 인생에서 가장 창피한 글들이고, 마음 같아선 다 불태워 없애버리고 싶다는 것이다. 나는 지금도 가뜩이나 맘에 안 드는 글들을 쓰고 있는데 이후에 부끄러워할 글까지 쓰고 싶지는 않다. + 노파심에 얘기를 하면, 이건 누구를 겨냥해서 쓴 게 아니고 그냥 예전부터 한 번 얘기를 하고 싶던 거였다. 근데 굳이 이 얘기를 붙이니까 오히려 더 누구를 겨냥해서 쓴 것 같네?-_-
8. 필순 언니의 5집과 6집을 연달아 들었다. 하- 이만한 음반 없다. 내가 이래 봐도 필순 언니와 함께 순대국밥도 먹고, 40분간 전화통화도 한 사람임. 이게 나다.
9. 고전음악을 듣을 때도 평소에 음악 청취 습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다. 롹빠 출신이라 그런지 비장하면서도 몰아 부치는 음악들이 좋다. 그래서 텐슈테트 형이나 므라빈스키, 스베틀라노프 같은 아라사 형들의 지휘를 좋아하곤 하는데 예외가 있다면 바로 첼리비다케 형이다. 이 형 음악은 정말 지독하게 느리다. 처음 들었을 때는 '뭥미'했었는데 들을수록 그 느림에 중독된다. 브루크너 8번이나 차이콥스키 6번은 그 절정. 이 형이 동양의 仙 사상에 대해서도 많은 공부를 했다고 하는데, 특히 아다지오 악장을 연주할 때는 완전한 우주의 음악이 된다. 그런데 이 형, 음악과는 다르게 완전 '싸나이'였다. 언행에 거침이 없었고, "카라얀 좆병신" 같은 숱한 도발성 발언을 하고 다니며 오아시스나 힙합 형들 귀싸댁션 날릴 정도로 디스에 강했다. 며칠 전에 첼리 형이 지휘한 베토벤 9번이 도착했는데 이것도 템포가 너무 느려서 일단 먼저 적응을 좀 해야겠다.
10. 3주에 한 번씩 쓰는 원고 하나가 있는데 이거 은근히 압박. 체감상으론 격주보다도 더 빠르게 느껴진다? 얼마 전에 원고 넘긴 거 같은데 벌써 새 원고 마감 시간이 오랑캐처럼 밀려왔다. 이거 포함해서 오늘 3개의 글을 써야 한다. 내일 점심 약속이 있어서 무슨 일이 있어도 내일 아침까진 끝내야 하는데, 음- 이따 야구 보고 시작해야지.-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