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담

이 여름에 나는

시옷_ 2009. 8. 21. 15:34
너무나 오랜만에 찾아뵙는 '스탭 코드'입니다. 애초 한 달에 한 번씩 찾아뵈려고 했습니다만 사람 일이 역시 계획대로만은 되지가 않는군요.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좀 더 부지런히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스탭 코드'는 여름에 듣기 좋은 음반으로 골라봤습니다. 8월 1일에 업데이트를 하려고 했습니다만 이번에도 사람 일이 계획대로만은 되지가 않는군요. 벌써 말복이 지나버렸고 내일 모레면 무려 처서군요. 그래도 절기가 우리가 체감하는 것보다는 조금 앞서나간다는 걸 너그럽게 익스큐즈해주시면서 남은 여름날 좋아하는 음악들과 함께 건강히 보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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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n Auerbach - Keep It Hid (2009, Nonesuch)

해변, 질주, 젊음, 시원한 음악. 무수한 여름 음악 추천 리스트가 있다. 이미 휴가를 다녀온, 혹은 휴가 따위 없는 이에게 사치일 따름이다. 땀으로 끈적이지도 않겠다. 올 여름에는 뜨겁게 사랑하시라는 에어컨도 없는데 무슨. (에어컨이 아니라 좀 더 본질적인 문제가 있지 않냐고 누군가 묻는다. 시끄럽다.) 그렇다면 선택은 모래 먼지 휘날리는 황량함이다. 건실한 비트와 노래가 여름을 묵묵히 이겨내리라. (서성덕/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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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스(Deux) [Rhythm Light Beat Black] (1994/지구레코드)

사실 여름에 듣기 좋은 음악을 꼽자면 케케묵은 듀스보다는 지금까지도 샤방샤방한 멜로디를 들려주는 펫 샵 보이스(Pet Shop Boys)나 괜찮은 보사노바 음반을 선택하는 것이 정답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해마다 여름이면 반드시 한번은 듣게 되는 앨범의 존재를 어떻게 숨길 수 있을까. 물론 지금 들으면 거친 녹음이 한국 힙합의 초기작이라는 것을 끊임없이 확인시켜주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 부르게 되는 친근한 랩과 멜로디의 향연은 여름날 방구석에 누워서건, 여행지로 떠나면서건 언제나 좋다. 아마 지금 10대들은 투애니원(2NE1)의 음악을 그렇게 오래도록 즐기지 않을까. 그러므로 유행은 결코 지나가지 않는다. (서정민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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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scoe [I Luv Cali] (2006/SMC)

여름에 듣기 좋은 음반이라. 무얼 고를까 고민하다 아무래도 나는 내 기본 영역에 충실해야지, 다른 영역은 다른 분들이 알아서 잘 해주시겠지, 라는 생각으로 웨스트코스트 힙합 앨범 하나를 집어 들었다. 도그 파운드(Dogg Pound)의 멤버이자 왕성한 창작력을 과시하고 있는 웨스트코스트 래퍼 커럽트(Kurupt)의 친동생인 로스코(Roscoe)의 2006년 작 [I Luv Cali]가 되겠다. 이 앨범을 고른 이유는 순전히 2번 트랙 때문이다. <Summertime Again>! 엄허 여름이 다시 왔네?? 이 곡을 듣는 순간 2006년에 나온 이 지-훵크(G-Funk) 사운드가 90년대의 찬란한 그것들에 결코 뒤지지 않음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보코더 사운드 듣고 그냥 죽는 거다! (김봉현/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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룰라(Roo'Ra) [날개 잃은 천사] (1995/월드뮤직)

긴 말 필요 없겠다. 앨범을 카오디오에 꽂자마자(그렇다. 당연히 카오디오다!) 나오는 첫 트랙 <Roo'Ra In 1995>에서 그들은 외친다. "새로운 룰라의 1995 / 만나게 되면 Reggae Hip-Hop"! 그렇다. 1995년은 새로운 룰라의 1995년이였음이 맞다. R.ef, 박미경, 노이즈 등 (이제는 이름만 남은) 기라성 같은 댄스그룹들이 다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1995년 대한민국영상음반대상의 골든디스크는 룰라에게 돌아갔다. 공중파 음악 프로그램의 영향력이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던 시절, 속된 말로 그냥 짱 먹었다 보면 되는 거다.

이는 모두 그 해 여름, 대한민국을 지배했던 <날개 잃은 천사>의 공일 것. 지금처럼 싱글이 따로 발매되는 것도 아닌지라 카더라 통신에 따르면 음반도 250만장 정도 나갔다고. (물론 크게 신뢰성 있는 집계는 아닐 테지만.) 실상 [날개 잃은 천사]는 싱글 하나 만으로 얘기될 수 없는 음반이기도 하다. 룰라라는 그룹 이름부터 'Roots Of Reggae'의 줄임말. 확실히 음반을 들어보자면 단순한 상업적인 댄스 팝 그룹이었다 말하기는 다소 아쉬운 게 사실이다. 레게와 힙합, 그리고 뽕끼의 삼위일체를 선보였다 말한다면 심한 과장일까?

애니웨이, 룰라의 진정성(!?)에 관해서는 이런저런 견해차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하나의 진리는 남는다. 음반 후반에 실린 <Hotel Califonia>. 긴장타지 마라. 당신이 아는 그 <Hotel Califonia>가 맞다. 물론, 당연히, 레게 힙합 버전이다. 이 정도 커버면 나름 레전드 아닌가? 속된 말로, 이거 박살난다. (단편선/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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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ively Ones [Surf Rider!/Surf Drums] (1993/Del-Fi Records)

여름엔 로큰롤! 이건 불변의 진리인 듯하다. 작업실에 도착해 컴퓨터를 부팅하며 오늘의 BGM을 고민하지만 여름에는 언제나 비틀즈, 비치 보이스의 초기 음반, 버디 홀리, 척 베리 등의 로큰롤 레전드를 플레이하게 된다. 거기에 서프 인스트루멘틀의 진수까지 더해지면 당장이라도 해변가로 달려가고 싶은 욕망이 불끈! 솟아오른다.

60년대 초반 벤처스와 함께 낭만의 서프를 연주했던 명밴드 라이블리 원스의 [Surf Rider!/Surf Drums]는 서프의 진리를 고스란히 담은 명반이다. 스프링 리버브와 펜더 일렉트릭 기타, 그리고 촌스러운 리듬 섹션이 결합하면 눈앞에 (가보지도 못한) 캘리포니아 해변이 넘실거린다! (김민규/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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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님들 [추억의 밤] (1985/대성음반)

이건 사실 억지일 수 있다. 이 앨범을 딱히 여름에 잘 어울린다고는 할 수 없다. 다만 내가 여름에 자주 듣는 음반일 뿐이다. '이치현과 벗님들'이 아닌 그냥 '벗님들'이었던 시절, 벗님들의 리즈 시절이었다. 이 앨범에는 벗님들의 최고 인기곡들인 <사랑의 슬픔>, <당신만이>, <집시여인>이 들어있진 않지만, 그에 못지않은 (숨은) 좋은 노래들이 가득하다. <추억의 밤>이나 <야생화> 같은 업템포의 노래들도 좋지만, 무엇보다 이 앨범을 빛나게 하는 건 <그대>, <다 가기 전에>, <그대 손길> 같은 발라드들이다. 지금 같은 열대야에서야 어렵겠지만,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여름밤에 벗님들의 발라드를 듣고 있으면 여름이 가지고 있는 매력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여름밤의 그 낭만을 말이다. (김학선/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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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lue Hearts [The Blue Hearts] (1987/Meldac Records)

"비만 오지 않는다면 여름도 정말 좋은 계절일 텐데..."라고, 철없는 생각을 종종 한다. 나에게 여름은, 소금땀과 녹는 아이스크림을 흘리며 개구쟁이마냥 천방지축 날뛰는 계절이다. 이마엔 땀방울, 마음엔 꽃방울, 그리고 귓가에는 [The Blue Hearts]. 땀 냄새 물씬 나는 새파란 젊음이 되어 힘껏 소리친다. "린다 린다!!" (권민기/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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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op [Waltz For Koop] (2002/Palm Pictures)

사실 '여름하면 딱 떠오르는 음반'이 따로 있는 건 아니다. 봄, 가을, 겨울은 있는데 나에게 여름은 그냥 음악이고 뭐고 빨리 지나가버렸으면 하는, 환영받지 못하는 계절이다. 순간적으로 떠오르지 않아 잠깐 생각해보니 쿱(Koop)의 데뷔작 [Waltz For Koop]이 떠올랐다. 앨범 내 수록곡인 <Summer Sun> 때문인지, 앨범이 발매됐을 때 "여름 밤 듣기좋은 음반"이라는 홍보문구가 떠올라서였는지, 내가 다른 계절보다 여름에 이런 류의 음반을 더 자주 들어서인지 모르겠다. 열대야가 이어지는 현실은 찝찝하고 짜증날 뿐이지만 여름밤이 실은 이렇게 낭만적이라는 환상 혹은 착각도 나쁠 건 없잖은가. (Da20ill/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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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ndersticks [Tindersticks] (1994/Island)

땡볕 아래 까닥하다 일사병. 한 밤이면 끈적한 열대야의 공격력을 17배는 증강시켜줄 고품격 이열치열 아이템. 삼복더위에 틴더스틱스를 듣는 그대야 말로 진정한 용자. (최훈교/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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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ipper's Guitar [Three Cheers For Our Side] (1989/Polystar)

여름은 해마다 찾아오지만 다시 오지 않을 순간을 만들기도 한다. 그 순간에 오야마다 케이고와 오자와 켄지는 하나였다. 그들은 바다에 갈 생각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한 소녀와 후배 둘을 데리고 그들이 향한 곳은 바다였고 그곳에서 다시 오지 않을 순간을 만들었다. 누구에게나 그런 순간과 여름과 바다 그리고 사람이 있을 것이다. 이걸 들으면 그걸 떠올릴 수 있다. (문정호/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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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shmans [宇宙 日本 世田谷] (1997/Universal Music)

한국의 여름은 무덥습니다. 그것도 해를 더해가며 점점 기세가 등등해지고 있죠. 덕분에 어디서건 불어오는 건조한 에어컨 바람이 지긋지긋해서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어디 해보자며 한여름 무더위와 맞짱을 뜨고 싶을 때, 없으신가요. 바로 그 때 이 앨범을 준비하세요. 그리고 눈을 감고 한증막 같은 거리나 방 한가운데에서 앨범의 첫 곡 <Pokka Pokka>부터 마지막 곡 <Daydream>까지 쭉 이어 듣습니다. 슬슬 심신에 득도의 기운이 스며듭니다. 그리고 "더워더워"를 입에 달고 흐르는 땀을 연신 신경질적으로 닦아내던 당신은 어느새 무더위를 잊고 피쉬맨즈 특유의 리듬에 덩실덩실 몸을 맡기거나, 흠뻑 젖은 열대야와 사랑에 빠지게 될 겁니다, 레드썬! 한 손에 시원한 맥주 한 잔까지 들려있다면 백프로 보장. 속는 셈 치고 한 번 도전해보세요. 세상만사 무엇이든 피하기보단 즐기라지 않던가요. (김윤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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