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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원고

조동진 [나무가 되어]

시옷_ 2016. 11. 24. 10:20

"기타를 집어넣는데 10년, 다시 꺼내는데 10년이 걸린 셈이네."

꼬박 20년이 걸렸다. 1996년 발표한 다섯 번째 앨범에 이어 여섯 번째 앨범이 나오기까지. 조동진은 "그렇게 빨리, 또 그렇게 많은 시간이 지났을 줄 몰랐"다며 20년의 세월을 이렇게 표현하였다. "기타를 집어넣는데 10년, 다시 꺼내는데 10년이 걸린 셈이네." 언젠가 장필순은 조동진에 대해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음악 하는 사람으로서 자기 마음속에 그릇이 있다면 선배님은 서두르지 않고 그 안에 물이 가득 차서 넘치려고 할 때 작업을 하시는 것 같다"고. 다섯 번째 앨범부터 함께 앨범 작업을 하고 있는 건반 연주자 박용준도 비슷한 말을 하였다. 

"형님은 늘 '뭔가를 하려면 아무 것도 안 해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다. 예를 들어 호숫가에 돌을 던져서 파장을 일으키려면 그 호수가 잔잔해야 하듯이 아무 것도 안 하고 있어야 한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박용준)

20년 만에 발표한 새 앨범의 제목은 [나무가 되어]이다. 그는 진정한 한국 대중음악의 거목이다. 조동진이라는 커다란 나무 아래 수많은 후배들이 모여들었고 하나의 숲을 이루었다. 우리는 그 숲을 하나음악이라 불렀고 지금은 푸른곰팡이라 부르고 있다. 작년 이 음악공동체는 조동진의 지휘 아래 [강의 노래]라는 옴니버스 앨범을 발표했다. 앨범의 표제곡이기도 한 '강의 노래'는 조동진의 새 앨범을 예고하고 있었다. 7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유려하게 흐르는 '강의 노래'는 도저하게 흐르는 장강 그 자체였다.

그렇게 노랫말을 통해, 악곡을 통해, 사운드를 통해 '새벽안개'와 '멀고 먼 섬'과 '강'의 이미지를 완벽하게 구현해내던 조동진은 이제 나무를 노래한다. 조동진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전 조동익이 연출해낸 소리의 풍경은 넓고 높고 아련하게 펼쳐진다. 그리고 관조하듯 흘러나오는 조동진의 목소리가 더해지는 순간 [나무가 되어]의 세계는 이미 완성되어 버린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지금껏 우리는 관습적으로 조동진을 포크 음악가라 불러왔다. 하지만 조동진을 포크란 틀 안에만 두기엔 그의 세계는 훨씬 더 광대하다. 가령 5집의 첫 번째 곡인 '새벽안개'보다 더 깊은 프로그레시브 록 음악을 찾기는 어렵다. 일찌감치 '어둠 속에서'가 그랬고, '그대와 나 지금 여기에'가 그랬고, '항해'가 그랬다. 푸른곰팡이 구성원들 가운데 가장 음악을 다양하게 듣는 이도 그였고, 어린 후배들에게 새로운 음악을 소개해주는 것도 그의 몫이었다. 이 다양한 음악의 배경을 두고 그는 다시 기타를 꺼내 새로운 곡들을 만들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곡들을 가지고 조동진과 조동익, 박용준이 함께 고민을 나누었다. 서울에서 제주, 453km라는 물리적인 거리는 에버노트라는 문명의 이기로 극복했다. [나무가 되어]의 사운드는 조동진이 전체적인 방향을 제시하면 조동익이 이를 실현시키고 다시 이를 조동진이 감수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2년의 시간에 걸쳐 이 과정이 반복됐다. '조동진=포크'라는 도식적인 수식이 얼마나 무의미한지를 다시 한 번 보여주는 앨범의 놀라운 사운드는 듣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많은 공과 시간을 들였을 지가 자연스레 전해진다. 조동익이 제주의 집에서 주조해낸, 일렉트로닉이라 분류해도 어색하지 않을 사운드와 세밀한 앰비언스는 감탄을 절로 이끌어낸다.

그 감탄스런 사운드가 품고 있는 건 결국 조동진의 노래다. 여전히 깊은 노랫말과 조동진의 목소리가 있다. 20년의 시간을 모두 담고 있는 듯한 목소리에는 그리움과 쓸쓸함과 허무함 모두가 배어있다. 또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아내에게 바치는 사별의 마음은 앨범 안에 물기를 머금게 하고 자연스레 듣는 이들의 마음까지도 적시게 한다. 이것은 말하자면 좋은 노랫말과 곡, 그리고 이 모두를 아우르는 사운드가 더해진 음악 그 자체의 음악이다. 칠순의 나이에 이처럼 치열하고 자유롭고 아름다운 결과물을 만들어낸 음악가를 우리는 과연 만났던 적이 있었던가. 우리는 이 나무 같은 예술가와 앨범을 충분히 자랑스러워해도 된다. (2016/벅스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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