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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

한국의 잭 블랙

시옷_ 2010. 3. 12.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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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선: 언제부터 음악을 좋아했었나?

이건웅: 되게 오래 됐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팝 음악을 듣기 시작했으니까 햇수로 30년 정도가 되는 거 같다. 그때도 가요는 안 듣고 외국 음악만 들었었다.

김학선: 특별히 누구의 영향을 받아서 음악을 듣기 시작한 건 아니었나?

이건웅: 라디오의 영향이 컸다. 우리 때는 누구나 다 FM을 열심히 들었기 때문에 중학교 땐 반에서 음악 좋아하는 사람이 한 80% 정도가 됐었다. 지금처럼 다양한 취미를 가질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고, 그 당시엔 음악감상 아니면 독서, 두 개 중에 하나였는데 독서는 그냥 다 하는 얘기였다. '이종환의 밤의 디스크쇼'나 '송승환의 별이 빛나는 밤에', '김광환의 팝스다이얼' 그 다음에 박원웅, 김기덕, 전영혁 등의 방송을 들었다. 그리고 후에는 '배철수의 음악캠프'도 조금 들었었는데 그 방송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좀 구리다.(좌중 웃음) 알려지지 않은 명곡 이런 걸 발굴하겠다기보다는 그냥 안주하는 경향이 강한 것 같다.

김학선: 그럼 어렸을 땐 어떤 음악들을 좋아했었나?

이건웅: 누구나 다 마찬가지 아닌가? 제일 처음엔 3대 밴드, 비틀즈(The Beatles), 퀸(Queen), 딥 퍼플(Deep Purple)을 좋아했다. 아직까지도 듣는다.

김학선: 레코드점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언제부터 했던 건가?

이건웅: 초등학교 때부터다. 어렸을 때부터 내가 가장 자신 있는 걸 직업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레코드 가게가 내 적성에도 잘 맞는 것 같고, 또 내가 가장 잘 아는 분야니까. 장사를 하려면 돈이 있어야 하니까 처음엔 곧바로 시작을 못하고 직장 생활을 2년 반 했다. 그때 돈을 많이 모았던 건 아니었는데 1994년에 우연히 돈 조금 들이고도 개업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시작하게 됐다.

Da20ill: 전에 만 장 정도의 LP를 싸게 구입할 수 있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건웅: 고등학교 때 잘 다니던 음악다방 같은 곳이 폐업을 하면 그곳의 LP들을 다 샀었다. 굉장히 싸게 샀다. 물론 빽판이 많긴 했지만 지금 단가로 하면 한 장당 100원, 200원에 샀었으니까. 그래서 한창 때는 음반이 만 장까지 있었다. 거의 그렇게 산 음반들이었는데 중복되는 것도 많고 빽판도 많고 그랬다.

김학선: 그럼 회사를 다닐 때도 오로지 레코드점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계속 갖고 있던 건가?

이건웅: 그렇다.

김학선: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레코드점을 한다고 하면 집안의 반대가 있었을 것도 같은데?

이건웅: 그런 건 없었다. 레코드점을 하고 싶어서 돈 모으려고 회사를 다니다가 음반 도매상엘 들어갔다. 집이 노량진이었는데 집 근처에 평화음악사라고 음반 도매상이 있었다. 평소에도 음반 업계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데다가, 마침 동네 근처에 있는 음반 도매상에서 직원을 구한다는 얘기가 있으니까 아무 거리낌 없이 다니던 회사를 그만 두고 입사를 하게 됐다. 음반 도매상이 하는 일은 소매상이 주문을 하면 그 음반을 모아서 갖다 주는 건데, 우리와 거래하던 소매상 가운데 한 곳을 내가 인수를 해서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서울역 4호선 자리에 있던 레코드점이었는데 그곳을 운영하던 할아버지께서 그만 하시겠다고, 인수할 사람 좀 알아봐달라고 하셔서 내가 되게 싸게 들어갈 수 있었다. 그 당시 돈으로 천만 원 주고 들어갔으니까 지금으로 치면 한 3천만 원 정도 주고 들어간 거다. 운이 좋았다.

김학선: 처음 시작했을 때 시행착오 같은 건 없었나?

이건웅: 음반 도매상 근무를 3개월 동안 하고 인수를 했기 때문에 그런 건 별로 없었다. 그리고 그 당시에 레코드점이 정말 호황이었다. 이어폰 같은 것도 무척 잘 팔렸고, 투투나 룰라 같은 추억의 명반들도 엄청 나갔었다.(웃음) 지금까지 레코드점하면서 제일 많이 판 음반이 룰라의 <날개 잃은 천사> 있는 그 음반이다. 하루에 100장씩 나갔다. 매일매일, 한 달 내내.

김학선: 처음에 레코드점을 인수해서 시작할 때 지금과 같은 레코드점을 만들어야겠다는 계획 같은 게 있었나?

이건웅: 그 당시엔 그런 마인드가 없었다. 음악도 그 당시 들었던 거는 블루스 록이나 헤비메탈, 이런 걸 주로 들었었기 때문에 지금 같이 테크노나 모던 록에 대한 마인드는 전혀 없었다. 서울역에서 장사하다가 98년에 홍대로 왔는데 그때까지 케미컬 브라더스(Chemical Brothers)나 블러(Blur) 같은 음반들을 한 번도 안 들었었다. 서울역에서는 가요하고 블루스, 하드록, 헤비메탈 같은 것들만 주로 팔았었는데, 홍대로 와서는 문화의 차이를 많이 느끼면서 그때부터 열심히 듣기 시작한 거다.

Da20ill: 그럼 원래 그런 음악들을 좋아해서 홍대로 온 게 아니었나?

이건웅: 아니다. 난 홍대가 이런 곳인지도 몰랐다.(좌중 웃음) 내가 서울역에서 장사하면서 돈을 좀 모았다. 엄정화 같은 최신가요들 하루에 100개씩 팔고, 이어폰도 마진이 장난이 아닌데 하루에 몇 십 개씩 팔았다. 그리고 건전지 같은 것도 하루에 50개 넘게 팔고 그랬다. 건전지는 또 따따블 장사다.(좌중 웃음) 그렇게 돈을 좀 버니까 좀 더 넓고 조용한 곳으로 옮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신촌, 이대, 홍대 이렇게 세 곳을 알아보러 다녔다. 신촌은 다 평수가 너무 넓어서 마땅한 곳이 없었고, 이대는 가보니까 애들이 너무 많은 거다. 이대로 오게 되면 내가 서울역에서 하던 대로 똑같이 장사하면서 가요를 팔게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난 가요를 잘 안 듣는다. 이런 가요의 충성에 대한 현실이 싫어서 다른 곳을 알아보러 다녔던 건데 이대에 들어가면 또 그 꼴이 날 거 같아서 맘에 들지 않았고, 홍대에 와보니까 동네도 조용하고 사람도 많이 없고 그래서 마음에 들었다. 돈은 벌었으니까 이제 홍대에서 조용하게 하드록이나 블루스 팔면서 살자, 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홍대에 오게 됐다.

Da20ill: 그럼 테크노나 이런 음악은 언제부터 듣게 된 건가?

이건웅: 서울역에서 장사할 때도 프로디지(Prodigy)나 케미컬 브라더스 같은 건 많이 팔렸었다. 프로디지의 [The Fat Of The Land]나 블러의 [Parklife], [Leisure] 같은 앨범들은 잘 팔리긴 했는데 개인적으로 듣진 않았었다. 프로디지 보고는 DJ 음악이라고 하는데 그런 거 너무 싫어했으니까 아예 안 들었고, 블러 보고는 브릿'팝'이라고 하는데 우리는 또 팝 이런 건 안 들었거든.(좌중 웃음) 오로지 록만 들었지. 브릿팝이 뭐냐? 팝송? 아, 우리는 그런 거 안 듣는다, 이러면서 안 들었고, 프로디지는 기계적인 음악이라고 해서 일부로 듣지 않았었다. 그러다가 좋아해서 들은 게 아니고 홍대로 오면서 그쪽을 찾는 손님들이 많다 보니까 공부하려고 1년 동안 테크노만 들었다. 문샤인 레이블 음악도 많이 듣고, 로랑 가르니에(Laurent Garnier)나 스벤 베스(Sven Vath) 같은 디트로이트 테크노도 많이 들었다. 그렇게 1년 동안 일렉트로닉만 듣다 보니까 내가 어느새 전문가가 돼있더라. 지금도 사실 우리 가게가 밥 먹고 사는 거는 다 일렉트로닉 때문이다. 일렉트로닉 손님이 제일 많다.

김학선: 그럼 홍대에서 지금과 같은 음반들을 판 이유가 단순히 수요 때문이었던 건가?

이건웅: 난 처음에 홍대에 클럽들이 많은지도 아예 몰랐었고, 그냥 신촌, 홍대, 이대 가운데 홍대가 제일 한적하고 조용해서 온 거였다. 와보니까 음악이 많이 달랐다. 팝이나 이런 거 팔아서는 도저히 안 될 거 같아서 그때부터 공부를 하게 됐다. 그냥 처음엔 블루스나 하드록이나 팔려고 했던 건데, 사람들이 와서는 "뭐 없어요? 뭐 없어요?" 계속 물어보니까 이렇게는 안 되겠다 싶어서 바꾸게 된 거다. 처음에는 뭐가 뭔지도 몰랐다.(웃음) 한번은 엉클(U.N.K.L.E)을 달라기에 난 우리나라 통기타 음악 하는 엉클을 말하는 줄 알고 그걸 줬더니 이거 말고 다른 걸 달라고 하더라.(웃음)

김학선: 결국 가장 장사가 잘 됐을 때는 서울역에 있었을 때였나?

이건웅: 그렇다. 김영삼 있었을 때가 제일 좋았다. 그때는 테이프를 많이 팔았는데 사는 사람들도 싸다고 생각했고, 파는 사람들도 마진이 좋았다.

김학선: 그때랑 비교해서 지금은 매출이 얼마나 준 건가?

이건웅: 그걸 단순평가하기가 어렵다. 서울역에서 장사할 때는 CD, 테이프 다 합쳐서 3천 장 정도 있었는데 지금은 3만 장이 넘는다. 근데 그때 하루 평균 매출이랑 지금 온라인/오프라인 합한 하루 매출이랑 비슷하다. 그러니까 장사는 그때보다 안 되는 거 같다.

김학선: 매출 액수가 줄어든 건데 그게 해마다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는 건가? 아니면 어떤 해를 기점으로 소강상태에 있는 건가?

이건웅: 잘 모르겠다. 계산하기가 어렵다. 그때는 3천 장 가지고 있었지만 지금은 3만 장 넘게 가지고 있고 라이선스가 아닌 수입음반을 더 많이 갖고 있기 때문에 잘 되던 때와 비교해 단순평가하기가 어렵다. 시장이 죽기 시작한 거는 내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는데 2002년부터 죽었다. 그 당시 월드컵도 4강까지 들고 국력이 국운상승해서 매출이 막 늘어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정반대였다. 원래 크리스마스 이브 때는 당일 매출이 평일의 5배 이상으로 올랐었는데 그해부터 기본 장사만 한 거다. 그해부터 크리스마스 특수도 없어졌고, 설·추석 명절 특수도 없어지기 시작했다. 2002년이 대변혁의 해였다.(웃음)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리 큰 매출의 변화는 없었지만 그때는 온라인이 없었으니까 매출은 떨어지고 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예상하고 있던 거였고 그래서 실망도 하지 않는다. 여기 Da20ill처럼 음악 좋아하는 사람들이 옛날만큼 CD를 많이 안 사는 건 확실한 거고, 그 사람들은 이제 한참 CD 살 때보다 아마 1/10 정도로 CD를 사고 있을 것이다.

Da20ill: 나 같은 경우엔 퍼플에서 많이 살 때는 한 달에 100만 원이 넘게 사기도 하고 그랬었다. 나중에 카드값 메우느라 고생을 하긴 했지만. 근데 그때는 각 음악 동호회들이 활성화돼있을 때였다. 나무(를 사랑하는 사람들) 카페도 그렇고, 벨앤세바스찬 카페, 목장 카페도 다 활성화돼있었는데, 그때는 그런 카페들을 중심으로 음악 듣는 사람들끼리 경쟁적으로 CD를 많이 사곤 했었다. 별별 이상한 아르바이트들까지 하면서 CD를 사고 그랬다. 근데 그러다가 음악 동호회들이 좀 침체된 것도 있고, 또 사람들이 하나둘 외국 사이트들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외국 사이트가 더 싸니까. 내가 실제로 그런 사람 중에 한 명인데 거기에 뺐긴 것도 많을 거다.

이건웅: 얘가 언제부턴가 우리 가게에서 가요만 사더라.(좌중 웃음) 처음에 난 얘가 좋아하는 장르를 가요로 바꿨다고 생각했는데 생각해보니까 그게 아니었다. 팝은 미국에서 사는 거고 가요는 여기서 사는 거였다. 물론 그런 걸 탓할 생각은 없다. 다만 이것만은 알아줬으면 한다. 미국에서 직접 사는 게 싸다는 건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한국 소매상이 그렇게 많이 받는 건 아니라는 거다. 우리나라 소주가 여기선 3천 원이지만 일본에 가면 만이천 원이다. 그렇다고 일본에서 술 마시면서, 이거 한국에서는 3천 원에 파는 건데 여기선 만 원 넘게 받는다고 주인 멱살 잡으면 나만 바보 되는 거다. 소비자들이 싼 곳에서 사는 건 좋지만 그렇다고 소매상들이 바가지 씌우는 건 아니라는 것만 알아줬으면 한다.

김학선: 이렇게 매출이 준 가장 큰 이유를 무엇으로 보는가?

이건웅: 역시 MP3다. 외국 사이트까지 가서 사는 사람들은 사실 그리 많지 않다. 음악을 진짜 마니아적으로 듣는 사람들은 외국에서 사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다 한국에서 산다. 외국에 손님을 많이 뺏겼다는 게 의미는 있는 거지만 수는 몇 명 되지 않는다. 하지만 MP3는 그렇지 않다. 만약에 씨 앤 케이크(Sea And Cake) 신보가 나왔다 치자. 씨 앤 케이크 신보를 들어볼 곳이 없어서 2만 원 주고 앨범을 샀다면 '내가 이 음반을 이왕 샀으니 반드시 이 음악은 좋아야 돼'라는 생각을 하면서 좋게 들으려고 애를 쓴다. 그러면 음악이 좋게 들린다. 하지만 MP3로 다운을 받고 컴퓨터로 다른 일을 하면서 듣게 된다면 '뭐, 좋긴 한데 살만한 음악은 아니네'라는 생각을 쉽게 하게 된다. 들어볼 수가 없으면 꼭 사고 싶다는 마음이 들지만 쉽게 한 번 듣게 되면 벌써 김이 반 이상은 빠져나간 상태인 거다.

김학선: 지금 퍼플레코드를 운영하면서 먹고 살만한가?

이건웅: 난 퍼플레코드 하면서 돈도 좀 모았고, 우리 가족 생활하는데 아무 지장 없다. 조금이지만 적금도 붓고 있고, 중학생 아들, 초등학생 딸 교육시키고 하면서 잘 살고 있다. 생계는 전혀 지장 없다. 우리가 지금 직원이 없는데, 직원이 그만 둬도 새로 뽑지 않는 이유가 지금 생활에 만족하면서 살기 위해서다. 만약에 직원을 몇 명 뒀는데 장사가 안 되게 되면 월세 내야 하는데, 직원들 월급도 줘야 하는데, 그러면서 자꾸 조바심을 낼 것 같다.

김학선: 수입음반 아이템들은 어떻게 선택을 하는가?

이건웅: 일단 팔릴만한 것들을 우선으로 한다. 우리가 가게는 작아도 미국에 거래처가 두 군데나 있고 캐나다에 한 군데, 독일에 한 군데, 영국에 한 군데가 있다. 레이블 팻 빗하고도 하고, 피-바인하고도 하고, 아무튼 열 개가 넘는 곳이랑 거래를 하는데 그쪽에서 하루에 두 번씩 메일을 준다. 하루만 메일 확인을 안 하면 메일함이 차버릴 정도다. 거기서 보내준 리스트들을 보고 내가 데이터베이스 작업을 해놓는다. 그리고 웹진들도 많이 다니는데 CMJ나 NME, 피치포크 이런 곳에서 참고를 많이 한다. 피치포크에서 밀어주는 음반은 사람들이 100% 다 사니까,(좌중 웃음) 거기에서 띄워주는 음반은 무조건 갖다 놓는다. 근데 빌보드는 안 본다. 파퓰러하거나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건 성격적으로 거부감을 느낀다. 난 왼손잡이고, 아웃사이더고, 학교 다닐 때도 선생님이 모여라 그러면 맨 뒤에서 어물쩡거리는 그런 애였다.(웃음) 빌보드 같은 건 안 보고, 많이 안 알려진 좋은 음악들을 소개하려고 애를 쓰고 있다.

Da20ill: 그래서 퍼플레코드는 마니아들이 가장 좋아할만한 레코드점이라는 인식이 있다.

이건웅: 근데 마니아들이 CD를 잘 안 산다.(웃음) 향(뮤직)에도 우리 가게에 있는 음반들은 거의 있다. 대신 향은 메인에 좀 유명한 것들을 많이 끼워 넣고 우리는 그렇지 않다는 게 차이긴 한데 향에도 있을 건 다 있고 우리랑 거의 똑같다. 왔다갔다하는 손님들이 거의 비슷하니까. 퍼플이 마니아 전문 레코드점이란 건 아닌 거 같다. 오히려 향은 직원이 많다 보니까 우리가 신경 쓰지 못하는 부분도 많이 신경 쓴다. 퍼플은 나 혼자 다 하다 보니까 모르고 지나치는 것들도 있다.

Da20ill: 예전에 루츠 마누바(Roots Manuva)나 아프롭(Afrob) 같은 뮤지션들을 퍼플 형한테 알려주면서 잘 팔리지는 않을 거라는 얘기를 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런데도 굉장히 많이 들여놨던 기억이 있다.(웃음) 그런 걸 보면 돈 버는 것하고는 상관없이 '마니아 전문'이란 걸 중요시하는 측면도 있는 것 같다.

이건웅: 물론 그런 게 있긴 하다. 그렇지만 지금 내가 장사하는 최고의 목적은 1위가 돈이다. 그 다음에 2위가 좋은 음악을 구비하자는 거다. 다른 가게에 없는 데이터베이스를 갖고 싶다. 분명 훌륭한 숍으로 키우겠다는 욕심은 있지만 어쨌든 간에 돈이 1위고 음반은 그 다음이다.

김학선: 그럼 온라인 사업을 시작하게 된 것도 줄어드는 매출에 대한 대안으로 시작하게 된 건가?

이건웅: 그건 절대 아니다. 오프라인 매장에 오는 손님들을 위해서, 내가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까지 알려주기 위해서 만들었던 거고, 지방 손님들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만든 거다. 사실 매출 증대는 안 이루어졌다. 우리는 만날 그 사람이 그 사람이다.(웃음) 매일 오는 사람만 오고, 매장이나 온라인 숍에 들어오는 사람은 다 아는 뻔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온라인으로 새로운 회원들을 모아서 매출 증대를 하겠다는 건 꿈도 못 꾸는 일이고, 그냥 평소에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 편의를 주고 싶었기 때문에 만든 거였다.

Da20ill: 개인적으로 퍼플을 이용한지가 오래 됐는데, 예전 온라인 사이트에서 퍼플 레코드가 추천하는 음악들을 들을 수가 있었는데 이젠 그게 없어져서 무척 아쉽게 생각한다. 디제이 곤잘레스 시리즈도 더 이상 나오지 않고. (※ 디제이 곤잘레스 시리즈는 퍼플 사장님이 직접 선곡·제작해서 손님들에게 나눠줬던 컴필레이션 음반이다.)

이건웅: 이제 그런 건 네이버 블로그에서 대신 그 역할을 다 하고 있지 않나? 옛날에는 레코드 가게 주인들이나 음반 많이 갖고 있는 사람들만이 음악에 대한 정보를 많이 갖고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누구나 다 다운받을 수 있고, 네이버 블로그에 가서 아무 이름을 쳐도 음악이 다 나온다.

Da20ill: 누구나 다 다운을 받을 수는 있지만 퍼플레코드에서 추천하는 음악이다, 라는 상징성도 크다.

김학선: 그리고 네이버에서 검색을 한다는 건 우리가 이미 그 뮤지션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검색을 한다는 거고, 반면에 곤잘레스 시리즈나 퍼플 사이트에서 들려줬던 음악은 우리가 모르는 새로운 뮤지션을 만나는 창구가 되기도 했다. 그게 혹시 저작권 때문에 중단한 건 아닌가?

이건웅: 그건 아니다. 사이트를 보면 운영자인 나는 조회가 가능하지 않나. 옛날에는 퍼플 사이트에 올린 음원들을 다운받게 했었는데 그 음악들의 다운로드 횟수가 너무 적었다. 한 달 내내 열 건, 스무 건도 안 됐다. 그 다음에 만들었던 게 인터넷라디오 식으로 해서 음악듣기만 가능했던 메뉴였는데 그때도 조회가 얼마 안 됐다. 하루에 이십 건이 안 되다 보니 필요 없다고 생각을 하고 없애버렸다. 그때 상처 많이 받았다. 그거 하겠다고 서버까지 6백만 원인가를 들여 만들었는데 조회 수가 너무 적은걸 보고 사람들이 더 이상 음악에 관심이 없다는 걸 알게 됐다. '동갑내기 과외하기' 같은 3류 영화도 4백만 명이 관심을 가지고 봤는데 음악은 그게 아니었다. '동갑내기 과외하기'에 4백만 명이 들었다는데 그건 그냥 천 명이 볼만한 영화다. 옛날 김건모 앨범과 마찬가진 거다. 지금 한국 영화는 너무 허황된 꿈에 젖어있는데 3년 내에 풍비박산난다. 지금 웬만한 영화가 백만이 넘는다는데 그건 너무 비정상적이다. '왕의 남자'를 천만이 봤다고 하는데 지금 4천만 넘는 우리나라 인구로 볼 때 이건 스탈린식 공산주의 국가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이건 정말 말이 안 되는 데이터다.

김학선: 음반 수입을 할 때 이건 되게 잘 팔릴 거다 생각했는데 안 팔렸거나, 별로 안 팔리겠다 했는데 의외로 잘 나간 음반이 있나?

이건웅: 일단 안 팔리겠다고 생각을 하면 수입을 하지 않는다.(웃음)

김학선: 그런데 아까 Da20ill 씨가 안 팔릴 음반을 추천했는데 수입을 많이 했다고 하지 않았나?

이건웅: 아니다. 누군가한테 추천을 받으면 일단 나도 한 번은 먼저 들어보지 않겠나? 그렇게 듣다 보면 '이 음반은 손님들 가운데 최소한 누구누구가 사겠다'라는 게 머릿속에서 떠오른다. 그렇게 살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수입할 앨범들을 결정한다. 향 사장님하고도 얘기를 많이 하지만, 향음악사가 성공할 수 있었던 건 연세대학교 앞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연세대 학생들이 좋은 음악을 많이 듣고, 향음악사 가서 좋은 음반 개인주문을 되게 많이 했다. 난 향 사장님이 누구보다도 먼저 토터즈(Tortoise)를 알았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연세대 학생들이 토터즈, 트랜스 암(Trans Am), 보니 프린스 빌리(Bonnie Prince Billy) 같은 것들을 주문하니까 '어, 이거 개인주문 하는 사람이 10명이 넘네?' 이러면서 좋다는 생각을 하고 많이 수입을 한 걸 거다. 나도 마찬가지다. 내가 발굴한 게 몇 개나 되겠나. 정말 얼마 안 된다. 다 손님들한테 정보를 얻고 하면서 수입을 하는 거다. 나는 Da20ill이란 사람이 지금까지 구매한 내역을 다 알고 있고, 이런 사람이 추천하는 앨범이라면 확실하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주문을 한 거다. 안 팔리겠다고 생각을 하면 아예 안 한다. 그렇기 때문에 안 팔릴 줄 알았는데 잘 팔렸던 건 없다. 대신에 기대 많이 했다가 박살난 건 되게 많다. 가장 대표적인 음반이 마이너스 파이브(Minus 5). 그건 내가 너무 좋아했던 건데 시장 반응이 너무 냉담했다. 추천을 해도 안 사고.(좌중 웃음) 그리고 보노보(Bonobo)도 그랬다. 보노보는 지금은 떴지만 옛날에는 정말 악성재고였다. 일렉트로닉 쪽은 그런 거 되게 많다.

김학선: 그럼 Da20ill 씨처럼 손님이 추천을 하면 많이 받아들이는 편인가?

이건웅: 대화를 많이 한다. 많이 물어도 보고. 그 사람이 지금까지 사갔던 히스토리가 머릿속에 다 있으니까 그 히스토리를 많이 생각한다. 이 사람이 지금까진 이런이런 음반들을 사갔었는데 전혀 다른 장르의 음반을 추천하면 일단 한 번 더 알아보고, 같은 계열을 추천하면 확실하다고 생각한다. 그것만큼 확실한 추천은 없다.

김학선: 이제 음반이란 건 사는 사람만 사는 시대가 됐다. 그래서 오히려 이런 점이 다른 일반 소매상보다는 타격이 덜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건웅: 우리는 일단 가요 판매량이 적다. 내가 왜 가요를 등한시 하느냐면 음악성이 나쁘기 때문이 아니라 어렸을 때부터 가요를 듣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요를 잘 모르기 때문에 별로 들여놓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사실 내가 싫어하는 건 가요가 아니라 SM 류의 어린 중고등학생들 상대로 코 묻은 돈 뺏어먹으려고 알록달록 꾸민 음악들이다. 그런 음악은 비유를 하자면 3백 원짜리 초콜릿에 3만 원짜리 우드케이스를 씌워 멋지게 보이도록 만든 것이다. 나도 김현식이나 조덕배, 들국화 같은 가요들은 좋아한다. 내가 요즘 TV를 도배하고 있는 대중가요를 싫어하게 된 건 전부 다 SM 때문이다.

김학선: 그래서 결론은 다른 곳들보다는 타격이 덜하다, 라고 봐도 되는 건가?

이건웅: 그렇다. 우리는 아무 지장 없다. 우리가 장사가 안 되는 건 경기가 죽어서 그런 것일 뿐이다. 난 이 생활에 충분히 만족하고 있고 우리 애기들하고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 절대 안 되는 거 아니다.

김학선: 손님들은 보통 학생이 많은 편인가? 직장인이 많은 편인가?

이건웅: 중간이다. 20대 중반의 손님들이 많다.

김학선: 보통 단골들 가운데 학생 때부터 왔다가 직장인이 된 경우도 있지 않은가. 그런 사람들은 구매가 줄어드는 편인가?

이건웅: 다 줄어든다. MP3 때문에. 음악은 여전히 사랑 받고 있다. 네이버 블로그만 가봐도 음악 좋아하고 즐기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대신 음악 좋아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음반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 수가 적어진 거 같다. 그건 괜찮다. 어쩔 수 없는 거고. MP3로 듣고 정말 좋은 건 음반으로 구입을 하지만 웬만한 건 그냥 MP3로 만족하는 것 같다.

김학선: 매장에서 트는 음악들의 기준이 있나?

이건웅: 난 내가 아는 음악 안 튼다. 모르는 것만 튼다. 모르는 음악들을 매장에서 틀면서 나도 그때 처음 듣는 건데 많이 들을 때는 하루에 열 타이틀까지 듣는다. 그게 엄청난 숫자다. 보통 사람들은 하루에 한 장도 듣기 힘들다.

김학선: 그럼 매장에서 나오는 음악을 듣고 그 음반을 사는 사람들도 많은 편인가?

이건웅: 꽤 있는 편이다. 음악 트느라 껍데기 뜯은 건 싸게 판다. 근데 그 음악들이 단순히 들어보기 위해서 틀어놓은 것이지, 지나가는 사람들한테 구매를 유도하기 위해서 틀어놓는 건 아니다.

김학선: 다른 인터뷰에서 사장님께 영향을 끼친 음반을 얘기해달라는 질문에 딥 퍼플, 퀸, 게리 무어(Gary Moore) 등을 언급했고, 아까 어릴 때 듣던 음악도 거의 이런 범위였다. 근데 좀 의아한 게 지금 퍼플에서 상대적으로 가장 취약한 장르가 하드록이나 헤비메탈이라는 거다.

이건웅: 누구나 자기가 어릴 때 좋아했던 음악은 죽을 때까지 좋아한다. 딥 퍼플이나 퀸, 게리 무어 같은 음악들은 지금 들어도 좋다. 하지만 그때처럼 많이 듣지는 않는다. 그냥 마음속에 담고 있는 거다. 헤비메탈은 비니 무어(Vinnie Moore) 때까지만 들었다. 그 후에 완전 속주 열풍 불 때부터 안 듣기 시작했고, LA메탈 같은 건 아예 인간 취급도 안 했다.(좌중 웃음) 그 다음에 둠이나 데스메탈 같은 건 내가 소화하기 힘들었다. 나는 쇠사슬에 가죽잠바 입은 주다스 프리스트(Judas Priest) 같은 걸 너무 좋아했었는데 포이즌(Poison), 래트(Ratt), 본 조비(Bon Jovi) 이런 애들이 화장하고 나오면서부터 '이건 음악이 아니다, 메탈이 아니라'라는 생각을 하면서 안 듣기 시작했다. 하드록이나 프로그레시브 같은 건 좋아했지만 내가 20년 동안 들었던 거라 좀 지겨운 측면도 있었다.

Da20ill: 지금은 없어졌지만 옛날엔 일렉트로닉하면 시티비트 레코드점이었다. 모던 록하면 향, 흑인음악하면 상아(레코드)가 강했었고, 퍼플은 어느 한쪽이 강점이기보다는 셋 다 2등 정도의 레코드점이었다.

이건웅: 기분이 나쁘다.(좌중 웃음) 같은 모던 록이라도 우리는 향이 가는 방향과 애초부터 좀 달랐다. 일렉트로닉도 시티비트는 하우스나 라운지 위주였지만 우리는 애초에 앰비언트나 익스페리멘탈 테크노 위주로 방향을 잡았고, 상아가 1등이라는 흑인음악도 상아가 메이저 중심이라면 우리는 앱스트랙이나 프로듀서 중심, 비트 위주로 된 음악을 많이 구비했다. 그래서 큰 장르에서 단순비교는 안 된다. 상아가 메이저 힙합 1등이라면 우리는 언더 힙합 1등이었고, 향이 브릿팝이나 멜로디 중심의 예쁜 모던 록이 1등이라면 우리는 익스페리멘탈/포스트 록에서 1등이었다. 유저들이 우리를 어떻게 평가할지는 모르지만 나는 퍼플이 그때나 지금이나 많은 특정 스타일에서 1등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난 셋 다 2등이라는 말에 동의할 수 없다. 약간 화가 난다.(좌중 웃음) 근데 1등이라고 하기도 좀 웃긴 게 지금은 아무도 일렉트로닉을 안 다룬다. 옛날엔 시티비트와 퍼플 이렇게 두 곳만 일렉트로닉을 다뤘다면 지금은 우리 혼자 하고 있는 거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일렉트로닉 장르의 1위일 수도 있고 꼴찌일 수도 있는 거다.

김학선: 향음악사와는 어쩔 수 없이 비교가 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솔직하게 향이 라이벌이라는 생각은 갖고 있지 않나?

이건웅: 갖고 있다. 그렇지 않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향에 있는 것 가운데 우리한테 없는 거는 꼭 수입을 한다. 매출에서 많이 차이가 있지만 그건 워낙 직원들이나 규모 면에서 차이가 나는 거고, 또 매출 같은 걸로 경쟁하고 싶지도 않다. 음악적으로 긍정적인 경쟁을 하고 싶다. 이번에 내가 보리스(Boris)를 처음으로 듣게 됐는데 이게 향에는 옛날부터 있었던 거다. 들어보니까 내가 너무 좋아하는 음악인데 '왜 우리는 이게 없었을까, 왜 단골들은 나한테 이걸 추천해주지 않은 걸까.'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보리스의 모든 앨범을 다 들여놨다.(좌중 웃음) 향은 [Pink] 앨범만 들여놨고, 난 전 세트를 다 주문했다.(웃음) 이게 보복 심리지.(좌중 웃음) 향은 전부터 갖고 있었는데 우리는 하나도 없었다는 게 자존심이 상해서 전 앨범을 다 들여놨고, 그 앨범들 다 잘 팔렸다. 근데 왜 단골들이 나에게 그간 보리스 얘기를 안 해줬는지는 아직도 의문이다. 그리고 향과 우리는 가는 방향이 좀 다르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일렉 쪽을 더 많이 할 생각이고, 향은 록 쪽에 더 강점을 갖고 있다. 이렇게 다양하게 가는 게 소비자 입장에서도 더 좋은 거라고 생각한다.

김학선: 개인적으로 음반에 대한 충성도가 가장 높은 집단이 흑인음악 쪽이라고 생각을 한다. 반면에 말은 많은데 잘 안 사는 집단이 인디 팝이나 모던 록 쪽이라고 생각을 하고. 퍼플에선 어떤 순으로 앨범이 많이 나가는 편인가?

이건웅: 얘기한 것처럼 힙합이 많이 나간다. 힙합 듣는 사람들은 자기가 좋아하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그 음반을 찾고, 그 사람들 하는 용어로 디깅하고, 비싼 것일수록 갖고 싶다는 생각이 강한 것 같다.

Da20ill: 근데 그런 것도 있는 것 같고, 모던 록 같은 음악은 퍼플 아니더라도 향에서 살 수 있지만 힙합은 이제 퍼플이 아니면 구하기가 어려운 앨범들이 많아진 측면도 크다. 아까 얘기한대로 예전엔 상아가 흑인음악 쪽의 1위였는데 어느 순간부터 퍼플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이건웅: 그래도 가장 많이 나가는 건 역시 일렉트로닉이다. 일렉트로닉은 해외 사이트에서도 비싸고, 음반이 다양하게 구비된 곳도 많이 없고 하니까 퍼플에서 많이 산다. 근데 보면 오너 취향에 따라서 단골들이 계속 바뀐다. 내가 일렉트로닉을 좋아하니까 일렉트로닉 단골들이 가장 많다. 일렉트로닉이 너무 좋다. 내가 록을 한 20년간 듣고 이제 록 음악은 많이  들은 거 같고 해서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겠단 마음으로 일렉트로닉을 들은 건데 좋은 게 너무 많다. 일렉트로닉을 좀 더 공부하기 위해서 미디 학원도 다니고 있고, 만들어보고도 싶다.

김학선: 각 장르별로 대표적인 스테디셀러가 있다면 얘기해 달라.

이건웅: 옛날 것들은 기억이 잘 안 나서 얘기하기가 어렵고 요즘 걸로 얘기하겠다. 록은 베이루트(Beirut)가 잘 나간다. 음반 너무 신기하게 잘 만들었다. 그 다음에 나이프(The Knife). 나이프도 음악 좋다. 그리고 그리즐리 베어(Grizzly Bear)도 잘 나간다. 애니멀 컬렉티브(Animal Collective)도 좋고, LCD 사운드시스템(LCD Soundsystem) 신보는 좀 실망스러웠지만 여전히 잘 나간다. LCD 사운드시스템은 1집이 워낙 좋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웬만하면 2집도 그냥 산다. 팬이란 게 그런 거 아닌가? 좀 구리면 어때. 힙합 쪽은 예전에 사운드 프로바이더스(Sound Providers) 같은 게 잘 나갔고, 요즘은 그렇게 눈에 띄는 게 없다. 일렉은 울리히 슈나우스(Ulrich Schnauss)라고 있는데 너무 좋고 나가기도 잘 나간다.

Da20ill: 퍼플레코드에서 추천하고 싶은 음반이 있다면? 이건 정말 사람들이 알아줬으면 좋겠다는 음반.

이건웅: 월드스 엔드 걸프렌드(World's End Girlfriend). 이건 정말 최근 1년 동안 들었던 음반 가운데 최고다. 그런데 그렇게 특별히 새로운 음악은 아니다. 내가 시규어 로스(Sigur Ros)를 좋아하니까 월드스 엔드 걸프렌드 음악도 좋다고 생각을 하는 거지, 사실 시규어 로스 비슷하게 하는 거다. 새로운 건 사실 없다.

김학선: 퍼플 이용자들 사이에선, 사장님이 영화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에 나왔던 잭 블랙(Jack Black)의 이미지와 흡사하다고 '한국의 잭 블랙'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건웅: 그 얘기 듣기 싫어서 요즘 운동을 굉장히 열심히 하고 있다.(웃음) 살을 많이 뺐다. 근데 그 영화는 정말 멋진 영화다. 레코드점 하는 사람들은 꼭 봐야 한다. 걔네들 대화하는 내용 중에 베타 밴드(Beta Band)도 나오고 스테레오랩(Stereolab)도 나오고 정말 재미있는 영화다. 레코드점의 모든 일상이 다 나오지 않나.

Da20ill: 잭 블랙 이미지면 좋은 거 아닌가?

이건웅: 뚱보로 나오지 않나.(웃음)

김학선: 외모가 닮아서 그렇다기보다는, 그 영화에서도 보면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 찾는 손님한테 잭 블랙이 막 뭐라고 하는 장면이 나오지 않나? 그런 것처럼 사장님도 좋고 싫은 게 분명하고 독특한 이미지를 갖고 있어서 그런 별명이 붙은 걸로 안다.

이건웅: 아, 이 얘긴 꼭 하고 싶었는데 꼭 적어 달라. 사람들에게 퍼플레코드는 유행과 상관없이 마니아적인 취향으로만 간다는 상상이 있는 것 같다. 우리가 좋아하는 음악만 팔고, 돈은 중요한 게 아니고, 모르는 사람들 내쫓고, 그런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은데 절대 그런 게 아니다. 퍼플은 단지 매출을 증대하려고 애를 많이 쓰는 숍일 뿐인데, 인터넷에 돌아다니다 보면 우리를 가리켜 음악을 너무 좋아하고, 좋은 음악을 많이 팔기 위해 노력하고, 돈도 별로 안 좋아한다는 등의 잘못된 미화가 너무 많다. 그건 절대 아니다. 퍼플레코드가 돈 되는 건 안 팔고 마니아적으로만 간다는 손님들의 미화도 사실은 잘못된 거다. 모르고 하는 얘기다. 난 그런 거 원하지도 않는다.

김학선: 그런데 그런 얘기가 또 그럴듯하게 들리는 게 퍼플레코드에는 동방신기 앨범이 한 장도 없다. 사장님이 동방신기나 SM을 싫어한다는 건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인터뷰 준비를 하다가 생각난 김에 동방신기를 검색해봤더니 정말로 한 장도 없었다.(웃음)

이건웅: 안 갖다 놓는다. SM에서 나온 게 딱 하나 있는데 보아 앨범이다.

김학선: 신화도 보이긴 하던데.

이건웅: 신화는 데이터베이스에만 있는 거고, 실제 앨범은 없다. 난 보아도 싫은데 사람들이 너무 많이 찾아서 어쩔 수 없이 갖다 놨다. 난 한국의 음악 산업이라는 게 완전 양아치 산업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음악 좋아하는 사람들이 CD를 안 사는 건지도 모른다. 음악 산업이라는 거에 대해서 환멸을 느끼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난 사람들이 CD 안 사는 거 이해를 한다. 동반신기는 정규 앨범이 2장만 나왔을 뿐인데 핫트랙스 데이터베이스에 보면 관련 상품이 50개가 넘게 뜬다. 그걸 보면서 정말 화가 났고, '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양아치 짓이다'라고 생각을 했다. 이런 걸 판다면 내 자신이 너무 한심스러울 거 같아서 SM 음반들은 아예 안 팔고, 앞으로도 안 갖다 놓을 생각이다. 단, 보아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찾아서 갖다 놓긴 했는데 그것도 조만간 단계적으로 축소해서 아예 없앨 생각이다. 근데 SM에서 엠-플로(M-Flo) 같은 것들도 제작하는데 엠-플로는 음악이 좋지 않나. 그래서 안 갖다 놓을 수도 없고 아무튼 딜레마다. 실리와 이상과의 차이다.

김학선: 인터뷰 처음부터 지금까지 퍼플의 1순위는 돈이다, 매출 증대가 목표다, 이렇게 얘기를 했지만 또 지금 얘기와는 상반되는 얘기이다. 1순위가 돈인데 작년에 가장 많이 팔린 동방신기 앨범을 갖다 놓지 않는다는 건 좀 맞지 않는다.

이건웅: 인정한다. 사실 나의 논리도 앞뒤가 맞지 않는 점이 좀 있다.(웃음) 하고 싶은 건 이렇지만 내가 못 따라가는 부분도 좀 있고. 다만 퍼플을 너무 미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른 곳들과 인터뷰를 하다 보면 퍼플을 상업적인 것보다는 멋진 음악을 공급하는 곳으로만 자꾸 유도를 하려고 하는데 난 그게 너무 싫었다. 내가 레코드가게를 왜 하겠나. 돈 벌어서 애들 먹여 살리고 학교 보내고 하려고 하는 건데, 인터뷰를 하다 보면 날 무슨 돈에는 전혀 신경 안 쓰는 자꾸 멋진 인간으로만 만들려고 하는 거다. 그게 너무 싫었다. 장사 잘 해서 돈 많이 벌고 싶다는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사람에겐 최후의 자존심이란 게 있지 않나. 그게 나에게는 동방신기는 팔기 싫다는 거고 신화는 팔기 싫다는 거다. 이런 건 좀 지키면서 살고 싶다.

김학선: 지금은 사모님과 두 분만이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건가?

이건웅: 이번에 아침 아르바이트 한 명이 들어왔다. 똑똑하고 성실한 친구라 요즘 기분이 좋다

김학선: 특별히 뽑는 기준이 있나?

이건웅: 음악 좋아하는 사람을 뽑는다.

Da20ill: 지금까지 퍼플 알바들은 다 음악도 많이 알고 좋아하는 사람들이었다.

김학선: 거의 손님들 가운데 뽑는 편인가?

이건웅: 지금까진 그랬었는데 이번엔 좀 여의치 않아서 홈페이지에 광고글을 올려서 뽑았다.

김학선: 전에 일하던 매장 직원 분의 미모가 입소문을 타면서 '퍼플 알바'란 이름으로 각 음악 사이트들에서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혹시 알고 있었나?

이건웅: 사람들이 '웨이브(weiv)'에 퍼플 알바 얘기가 산더미처럼 쌓여있다고 가보라서 해서 가봤더니 다 써 있더라.(웃음)

김학선: 그 후에 매상에 좀 변화라도 있었나?

이건웅: 전혀 없었다.(웃음) 뻔한 거 아니겠나. 그냥 얘기들만 했던 거지, 직접 얼굴 보고 쓴 사람들은 얼마 안 됐을 거라고 생각한다.

김학선: 앞으로 CD라는 매체가 사라질 거라고 생각하나?

이건웅: 물론이다. 음악 좋아하는 사람이 줄어들진 않는다. 음악은 생활이기 때문에 계속 가겠지만 CD라는 매체는 사라질 거다.

김학선: 그게 언제쯤이라고 생각하고 있나?

이건웅: 그건 잘 모르겠다. 다만 확실한 건 CD란 매체는 사라진다는 거다. 옛날에 석유곤로가 있었는데 그게 주부들을 해방시킨 물건이다. 연탄불로 밥을 하려면 계속 연탄불을 살려야 하고, 그걸 꺼지지 않게 제때 맞춰 갈려면 새벽에 일어나서 갈아줘야 했다. 근데 석유곤로는 연탄불 없이 석유만 넣고 심지에 불만 붙이면 밥이 되는 거니까 얼마나 간편해진 건가. 하지만 그 석유곤로도 이제 가스레인지에 밀려서 아무도 쓰지 않는다. CD라는 매체도 마찬가지다. 열을 가해서 밥을 해먹는 행위는 인류 역사가 끝날 때까지 계속 이어지겠지만 석유곤로라는 물건은 사라졌다. 마찬가지로 음악 듣는 행위 역시 영원히 계속 되겠지만 이제 곧 CD라는 물건은 사라질 것이다. 근데 이게 내가 옛날에 했던 인터뷰와 생각이 많이 바뀐 부분이다. 그때는 CD라는 매체는 사람들이 소유욕이 있기 때문에 계속 간다고 생각을 했는데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김학선: 그럼 퍼플레코드는 언제까지 운영할 생각인가?

이건웅: 어려운 질문이다. 나는 계속 하고 싶다. 내가 지금 정확히 마흔인데 옛날부터 정년을 쉰으로 생각하면서 일을 해왔다. 50살까지는 하고 싶다. 만약 상황이 내가 생각한 대로 계속 이어진다면 할 수 있는 거고, 상황이 나빠진다면 못하는 거다. 근데 내가 50이 넘어서도 가게에 계속 앉아있다면 안 될 것 같다. 하고 싶어도 못하는 거다. 먼 얘기 같은데 이제 10년밖에 안 남았다. (웃음)

김학선: 퍼플레코드나 향음악사 같은 음반점들이 핫트랙스나 신나라레코드처럼 덩치만 크고 별 특색은 없는 대형 음반점들보단 그래도 더 경쟁력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건웅: 근데 내가 인간의 나이로 50이 됐을 때, CD 사러 왔는데 매장을 할아버지가 지키고 있으면 좀 그렇지 않겠나. "이거 찾아주세요, 이거 어디 있어요?" 이런 얘기들을 나이 많은 아저씨에게 쉽게 할 수 있을까? 나 같으면 안 할 거 같다. 내가 그냥 찾지. 나는 상관이 없는데 손님들이 어려워하고 불편해할 거 같다.

김학선: MP3에 대한 생각은 어떤 편인가?

이건웅: 그건 거역할 수 없는 대세다. 싫으나 좋으나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음반이 MP3와 붙으면 백전백패다, 백전백패.

김학선: 퍼플레코드만의 자부심이 있다면 어떤 게 있나?

이건웅: 일렉트로닉이다. 앞으로도 일렉트로닉 쪽을 열심히 하고 싶고, 이 리얼 연주가 아닌 음악장비로 만들어진 음악들에 관심이 많이 있다. 시간이 없어서, 혹은 여력이 안 돼서 리얼 악기를 못 다루는 사람들도 음악을 만들 수 있는 게 일렉트로닉이다. 나도 지금 학원 다니면서 열심히 공부도 하고 만들어보고 있는데 타고난 재능이 없어도 음악을 만들 수 있다는 그런 좋은 점이 있다. 피아노도 못 치고 기타도 못 치지만 음악을 좋아하고 많이 아는 사람은 누구나 만들 수 있다. 또 누군가 일렉트로닉은 가짜 음악이라고 항변하면 그것도 일리가 있는 얘기겠지만, 어쨌거나 앞으로 일렉트로닉 음악을 열심히 하고 싶다. 많이 팔고 싶고, 보다 많이 저변확대가 이뤄졌으면 좋겠다.

김학선: 처음 레코드점을 시작할 때 꿈꿨던 레코드점의 모습과 지금의 모습을 비교하면 어느 정도 이뤘다고 생각하나?

이건웅: 홍대에 와서 120% 이뤘다고 생각한다. 내가 홍대를 안 왔으면 아마 만족도가 떨어졌을 것이다. 홍대는 역시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그런 다양한 취향에 하나하나 맞추다 보니까 어느새 내가 음악에 해박한 사람이 돼있었다. 만약에 내가 종로나 답십리에서 레코드가게를 했다면 지금보다 만족도는 덜했을 것이다. 다양한 사람들을 대하다 보니까 나도 모르는 새에 내가 음악을 많이 아는 사람으로 분류가 돼있던 거다. 120%라고 본다.

김학선: 앞으로의 꿈이 있다면?

이건웅: 사람들이 음악은 여전히 사랑하지만 음반은 사랑하지 않으니까 음반 판매업자들이 열심히 하고 또 손님들에게 좋은 정보도 줘서 음악도 사랑하면서 음반도 같이 사랑할 수 있는 그런 시스템을 만들고 싶다. 손님들하고 항상 대화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보다 열심히 더 많은 음악을 듣고, 좋은 음반을 추천할 수 있게 노력할 생각이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건 값이다. 최대한으로 노력해서 CD 판매 단가를 다운시키고, 외국 판매 사이트들과 가격차이 줄이면서 한국에서 보다 많은 CD를 살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김학선: 보다 개인적인 꿈이 있다면?

이건웅: 우리 아들이 지금 중학교 1학년인데 아침 7시 반에 집을 나가서 밤 9시에 들어온다. 아침에 학교에 갈 때 학원 가방을 4개를 들고 나간다. 이런 X같은 세상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지, 이런 세상을 누가 만들었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가고, 진짜로 세상이 한 번 바뀌어야 할 것 같다. 이런 세상은 정말 한 번은 바뀌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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